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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May 01. 2024

300년의 기다림

손으로 쓰는 글

도시가 생기기 이전 시대의 마을들은 산자락, 물길 따라 말 그대로 자연(自然)스럽게 형성되었다. 마을의 입구에는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어 그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곤 했다.


아직 대학생이 한량으로 놀고먹어도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던 시절의 끄트머리. 대학생이었던 나는 입학 후에 엉뚱하게도 풍물 자락, 꽹과리 소리에 말 그대로 미쳐서, 거의 풍물학과에 진학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공부보다는 딴짓에 대학생활의 과반을 쏟아부었다. 그 시절 나는 여름마다 농활, 전수관 생활에 땀 깨나 흘리면서 밤이면 선후배, 동기들과 빙 둘러앉아 그날 하루살이에 대해 진지하게 떠들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을 기장 경력하게 사로잡았던 것은 단연 풍물굿이었다. 그저 우리끼리 운동장에 모여서 소꿉장난하듯 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렁더울렁 하며 치는 굿자락만큼 젊은 나의 영혼을 춤추게 했던 것이 없었다. 특히 당산나무 아래 모여 상쇠의 '깨갱 깽깽깽깽' 소리를 시작으로 장구, 북 등 모든 악기들이 소리를 어르는 '어름굿'을 칠 때 느껴지는 신명과 설렘, 경건함 등의 다채로운 감정은 평소에 전혀 경험할 수 없는 것이어서 더 신묘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 뜨거웠던 시절 이후로 내가 어딘가에 가서 당산나무를 보았던 기억이 없다. 어쩌면 눈으로 보았음에도 마음에 남기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내 기억과 뇌리에서 완전히 잊혔던 당산나무가 마치 수십 년 전에 헤어진 옛 연인을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그렇게 갑자기 나에게 찾아왔다. 아니 말을 반대로 해야 옳다. 당산나무는 늘 있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었을 뿐이다. 그 존재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세상살이에 바빴던 내가 이리저리 헤매다 마침내 그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가족 여행 중에 머물렀던 한옥 숙소는 야트막한 산자락과 아담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곳에 자리 잡은 오래된 마을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의 초입에 아주 커다란 수관을 드리운 채 푸르디푸른 이파리를 빛내는 당산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나무 앞에는 300년 된 느티나무라는 짧은 설명과 함께 보호수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한동안 나는 나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동해야 하는 일정을 다 미루고 반나절 그 나무 그늘에 앉아 그저 가만히 나무가 내는 소리를 듣고, 나뭇잎이 살랑살랑 일렁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다. 나 혼자 거나 남편과 둘만 하는 여행이라면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나무가 이 자리에서 300년을 지키고 서 있었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을까, 나무는 그네들을 다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어쩌면 이 나무도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이가 있을까? 있다면 그녀 혹은 그 혹은 그것이 오길 기다리며 이 자리에 이렇게 우뚝 서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어쩌면 이 나무와 나도 이렇게 오늘 만날 운명이었을까? 300년의 기다림 가운데 만난 생명들 중에 나도 들어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코끝이 찡하고 마음은 두근거렸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혼잣말을 떠올리며 한참 동안 나무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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