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후배의 제안

by 엠디언니

1.

민재! 지수! 영찬! 수지! 세영! 패션팀 파이팅!


3개월 동안 같이 일하고 있던 인턴 2명이 오늘 드디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최종 발표를 앞두고 우리 모두 며칠 동안 계속 조마조마했는데 - 둘 다 안 되면 당연히 슬프고 또 둘 중에 한 명만 되는 것도 마음 놓고 기뻐할 수가 없으니까 – 다행히도 둘 다 합격이었다.


정식 팀원이 된 수지님과 세영님을 위한 축하 파티와 아직 연말이 조금 남긴 했지만 송년회를 함께 하기로 했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택시 2대를 둘, 셋 나눠서 타고 민재님이 미리 예약해 둔 곳으로 갔다.

희한하게도 우리 다섯 명 다 술을 즐기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 모두 술을 못 마시니까 아쉬운 사람도 없고 가끔 회식을 해도 깔끔하게 1차면 끝이다. 그래도 오늘은 엄연히 두 사람을 위한 축하 파티인 만큼, 민재님이 축하주로 달달한 샴페인 한 잔씩만 마시자고 제안했다. 공식적으로 다섯 명이 한 팀이 되었다는 의미로 민재님부터 한 명씩 자기 이름을 외치면서 샴페인 잔을 위로 올려 건배했다.


사실 우리 축하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어요. 여러분이 정말 잘해주신 덕분에 3분기 4분기 KPI를 초과 달성하면서 다음 달 어워즈에서 커머스 파트는 패션팀이 받게 됐어요.

우와, 대박.. 저 다니면서 어워즈에서 상 받는 거 처음이에요. 패션팀 최고다, 건배!


민재님이 전한 깜짝 뉴스에 신이 나서 잔을 다시 위로 올렸다. 다 같이 웃으면서 내 잔에 각자의 잔을 부딪치며 ‘패션팀 최고!’를 외친다.

회사에서는 파트별로 한 해의 성과가 가장 좋았던 팀을 선정해서 시상식도 하고 특별 성과급도 – 현금과 스톡옵션 중에 선택할 수 있다 - 지급한다. 매년 1월 새해 첫 타운홀 미팅이 이 어워즈로 진행되는데, 내가 입사한 뒤로 있었던 두 번의 어워즈에서 커머스 파트는 모두 식품팀이 수상했었다. 우리가 식품팀보다 목표 달성률이 높다니, 이게 다 ‘민재효과’인 건가.


제가 조금 까다롭고 가끔 요구사항이 많다는 것 알고 있어요. 그래도 지수님, 영찬님 두 분 다 6개월 동안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하시면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셔서 참 고마워요. (나와 한번, 그리고 영찬님과 한 번 눈을 맞췄다) 수지님, 세영님도 선배들 일 잘하는 거 지금까지 봤죠? 많이 물어보시고 많이 배우세요.

조금? 가끔? 의아한 어휘 선택도 있긴 한데, 민재님이 이런 직접적인 칭찬과 심지어 고맙다는 인사를 우리에게 전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갑자기 울컥하면서 두 눈에 뭔가 차오르려 했지만 살짝 남은 샴페인을 마저 비우며 삼켜버렸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가로등을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민재님이 오신 뒤로 휙휙 지나가버린 지난 반년이 떠오른다. 지금 또다시 생각해도 부끄러운 첫 원온원과 끊임없이 식은땀을 흘리게 했던 민재님의 슬랙 메시지들.. 주말마다 몰아봤던 유튜브 엑셀 강의들과 친절하게 기능 하나하나 알려주시던 원님 – 그때만 해도 원님이랑 진짜 어색했는데. 순식간에 또 원님이랑 있었던 일들로 파노라마의 주제가 바뀌어 버린다.


원온원이 끝날 때쯤, 그러니까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부터 뭔가 감이 잡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다 같이 모여서 했던 7월 리뷰에서 발표하고 나서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데이터 분석하는 거에 재미도 붙였다. 타이밍 좋게 그때 민재님이 TF를 시켜서 데이터를 진짜 많이 봤었지. 엑셀도 제대로 못 했던 내가 지금 이렇게 SQL까지 할 수 있게 된 거 보면 ‘민재효과’가 있는 게 확실하다.

2.

지수님, 혹시 지금 하고 계시는 매출 분석이요. 시간 되실 때 저희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여느 월요일과 다름없이 출근해서 바로 주말 매출을 분석하고 있는데, 내 자리 뒤로 수지님과 세영님이 다가와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내가 아침마다 실적을 보고 여기에서 특별한 인사이트가 있으면 우리 팀 채널에 공유하거나 마케팅팀과 작당을 하는 걸 보면서 수지님이 항상 신기해했었다. 이제 반박불가 공식 팀원이 되었으니 그간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가 보다 – 저번 주 회식 때 민재님의 ‘많이 물어보고 많이 배우세요’ 발언을 바로 실천에 옮기는 건지도 모른다.


둘 다 엑셀에 영 자신이 없다고 해서 기초부터 튼튼히, 분석은 마지막에 배우는 걸로 하고 이번 주랑 다음 주 수요일에 1시간씩 만나기로 했다 – 물론 진도 나가는 속도에 따라서 더 만나야 할 수도 있겠지만. 엑셀을 얼마나 할 줄 아는지 가늠할 방법이 없어서 내가 쓰고 있는 일간 매출 분석 테이블 양식을 2장 프린트해서 수지님과 세영님에게 나누어줬다.

이 표랑 똑같이 엑셀에서 만들어서 수요일에 우리 만날 때 파일로 가지고 오실래요? 수요일에는 여기에 나오는 용어 뜻 알려드리고 함수 같이 넣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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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 길쭉한 표 – 처음에 만들었던 것보다 많이 길어졌다 – 가 인쇄된 종이를 들여다보면서 둘이 똑같이 이 정도야 뭐 쉽지 않을까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컬러랑 테두리도 일단 똑같이 만들어 오셔야 돼요. 만들면서 궁금한 거 있으시면 아무 때나 슬랙 하세요.라고 몇 마디 더 남기고 자리로 돌려보냈다.


3.

그래도 수지님 세영님 둘 다 역시 인턴 짬밥이 있어서인지 수월하게 진도를 따라왔다. 첫날에는 각자 만들어 온 표를 보면서 GMV, Unitsold, DoD, WoW, YoY 등 매출 분석에서 자주 사용하는 지표 용어들을 설명했다. 담당 카테고리의 – 수지님은 가방과 신발을, 세영님은 잡화를 관리하게 되었다 – 일간 매출 데이터를 태블로에서 추출하는 방법, 엑셀에 데이터를 붙여 넣은 뒤 IFS 함수들로 필요한 데이터를 불러오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나니 수지님과 세영님의 텅 비어있던 표에도 데이터가 꽉 들어찼다.

두 분은 첫날 배운 방법으로 매출을 분석해 보는 걸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다음 수업 전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수지님과 세영님의 데스크톱 폴더에도 일자별 분석 테이블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할 것이다. 데이터 채워 넣는 걸로만 끝내지 말고 간단히 전일 대비, 전주 대비, 전년 대비 카테고리 실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카테고리별로 딱 한 줄씩 써서 팀 채널에 공유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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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부터 두 분은 마치 누가 먼저 올리나 경쟁이라도 하는 듯이 출근하자마자 매출 데이터를 보고는 팀 채널에 담당 카테고리의 실적을 남겼다. 매일 둘이 슬랙을 남기자마자 바로 누군가가 엄지 척 이모지로 반응해 준다 – 누가 이렇게 빨리 리액션을 해주나 하고 보니까 민재님이다. 내 슬랙에는 이런 거 잘 안 해주면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 수업 – 다행히 계획에 차질 없다 – 날에는 데이터를 읽고 인사이트를 얻는 3단계(제4화. [How-to] 지수의 모닝루틴 따라잡기 참고)를 다루기로 했다. 그런데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수지님이 질문을 쏟아낸다.


제가 일주일 동안 매출 분석을 하다 보니까 가방이 어떤 날은 다른 품목들보다 한 품목이 유난히 많이 팔리고 그다음 날은 또 그 품목 매출이 훅 빠지고 변화가 심하더라고요. 근데 왜 그 품목이 잘 팔렸는지 아니면 매출이 감소했는지 궁금한데 그다음엔 뭘 봐야 하나요?


직접 분석해 보면서 궁금한 점이 많았나 보다. 그런데 내가 수지님과 세영님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방법, 숫자를 보고 ‘왜?’라는 질문을 가지는 것을 이미 스스로 터득했다.

오~ 수지님. 제가 오늘 두 분께 알려드리고 싶었던 것이 지표를 보고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로 검증하고 거기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해 내는 거였어요. 근데 이미 수지님은 제가 알려주기도 전에 ‘왜 그렇지?’라는 질문을 하고 계셨네요.

지금 표처럼 ‘왜 다른 품목 매출은 다 빠졌는데 크로스백은 늘어났지?’하고 튀는 숫자를 보면 질문이 떠오르죠. 그럼 그다음엔 '어떤 크로스백 상품'이 전일 대비 매출이 많이 늘어났는지 상품 단위의 데이터를 보는 거예요. 매출증가액 내림차순으로 보면 가장 많이 신장한 상품들 순으로 볼 수 있어요. 상위 상품들 보니까 상품명에 ‘퀼팅’ 들어간 게 많네요 – 수지님이 아! 하고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겨울에 수요가 높은 ‘퀼팅 크로스백’ 상품군 매출이 상승하기 시작했나 봐요. 여기 매출 제일 많이 늘어난 상품, 고객이 어떤 경로로 상품페이지에 유입됐는지 볼까요?

우와, 그런 것도 알 수 있어요?


네 그럼요. 고객 행동 하나하나가 다 데이터로 남아 있어요. 이따 제가 이 상품별 유입경로 조회 대시보드는 링크로 드릴게요. 기간이랑 상품 ID 입력해서 조회하면 유입경로가 가장 많은 것부터 순서대로 나와요. 아, 유튜브에서 우리 상품페이지 링크 걸고 광고했나 보네요.

가장 많은 고객이 유입된 경로는 유튜브의 어떤 인플루언서 채널이었고, 그다음으로 우리 플랫폼에서 ‘퀼팅 가방’을 검색해서 이 상품페이지에 들어온 고객이 많았다.


뭔가 데이터를 발굴해서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가는 느낌인데요? 재미있어요!


다행이다. 데이터 분석에 대해 그런 긍정적인 감정이 생겨난 것만으로 내 역할은 다했다. 세영님이 담당하는 잡화 카테고리의 실적도 함께 보면서 특정 품목의 매출 증가 원인을 살펴보고, 또 증가한 매출을 쭉 이어나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아이디어를 나눴다. 1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4.

다음 날, 세영님이 귀여운 토끼 얼굴로 가득 채워진 포장지로 싼 작은 상자와 카드를 건넸다.


좋은 수업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지수님. 어제 집 가는 길에 선물드리려고 하나 샀어요. 당 떨어지실 때 드세요.


헉 세영님, 뭘 이런 것까지.. 잘 먹을게요.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물어보세요, 꼭이요!


세영님이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포장지를 뜯기가 아까웠지만 검지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떼어내어 선물을 열어봤다. 색깔도 모양도 서로 다른 8개 초콜릿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아직 아침이라서 당이 떨어진 건 아니었지만 상자 오픈 기념으로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어 냠하고 입에 넣었다.

세영님이 손글씨로 써서 준 카드는 의외로 길었는데, 감사합니다. 정식으로 같이 일하게 되어서 정말 기뻐요 등등의 이야기 끝에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 하나 쓰여 있었다.

오랫동안 했던 MD 취업스터디가 있는데, 이번에 저까지 해서 모두 취업에 성공했어요. 지수님 수업이 참 좋아서 어제 스터디 친구들한테 얘기하니까 자기들도 듣고 싶다고, 자기들은 그런 거 알려줄 사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저랑 수지님한테 해주셨던 것처럼 저희 스터디 모임에도 오셔서 수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수업비는 정하시는 대로 지불할게요! 생각해 보시고 편하게 알려주세요, 지수님. 어렵다고 하셔도 전혀 개의치 않는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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