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 데이터 분석 강의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강의는 어떤 내용인가요?
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신입과 주니어 친구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강의인데요. 데이터 강의라고 해서 단순히 엑셀 스킬만 알려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업무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스스로 ‘왜 그럴까?’ 질문하면서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설을 검증해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도출해 내는 데이터 기반의 문제해결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력서 보니까 4년 차시네요. 지수님은 그럼 신입일 때부터 데이터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아니요, (웃으며)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숫자나 지표, 데이터와는 영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신입일 때는 최대한 그 약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방향성이 바뀌면서 데이터 분석이 중요해졌고, 변화한 환경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살아남기 위해, 또 인정받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기본 스킬을 익히고 나서부터는 신규 브랜드 영입 활동, 리텐션 개선을 위한 TF 활동에서 상품노출과 전환율, 고객 재구매율 등 다양한 데이터를 접하며 분석을 통해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걸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더 관심이 생기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변화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셨네요. 저희 팀에서는 어떤 데이터를 분석해보고 싶으세요?
워낙 크고 다양한 고객 풀을 보유하고 있어서 고객을 구매주기에 따른 세그먼트로 구분하여 구매 상위 상품과 재구매율 등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려고 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각 세그먼트 성향에 맞는 프로모션을 기획해 보고 싶어요.
리텐션 TF 활동에서 충성고객의 구매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고객 등급별 1년 간 구매 상위 상품의 특징을 분석했었는데요. 일회성 고객, 즉 플랫폼을 한 번 이용하고 1년 동안 재구매하지 않은 고객의 경우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대형 할인기획전에서 상품을 구매한 케이스가 가장 많았고, 충성고객일수록 할인기획전 시기와 상관없이 구매가 발생하고 특히 특정 브랜드 상품 위주로만 구매하는 고객 비중이 높았습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에 대한 단독 입점 협의와 더불어 충성고객 대상 혜택 등을 제공하여 분기 리텐션을 5%p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좋아요. 우리도 아직 그런 분석은 못 해봤던 것 같은데, 저희 팀 분석 결과도 기대되는데요.
2.
갑작스러운 이직 준비와 면접은 세영님의 스터디모임을 위한 강의를 세 번째로 – 총 8회의 수업으로 강의안을 구성했다 - 하러 간 날부터 시작되었다.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해서 강의 세팅을 하고 있는데, 세영님과 항상 둘이 같이 앉아서 수업을 듣는 친구가 일찍부터 스터디룸으로 들어왔다. 한 주 잘 보냈나요. 날씨가 진짜 너무 춥네요. 뻔한 인사를 마쳤다.
지수님 혹시 이직할 생각 있으세요?
이직이요? 어, 생각은 안 해봤는데 뭐 좋은 자리라도 있나요?
우와, 관심 있으신 거죠? 저희 팀에 퇴사자가 있어서 지금 4-5년 차를 뽑고 있는데, 지수님이랑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제가 추천하면 서류전형은 면제되는 게 있어서 바로 면접 보실 수 있어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N사에 다니는 친구다. 솔직히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정말 좋은 기회였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그 친구의 손을 덥석 잡고 싶었지만,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근데 제가 주말 동안 조금 고민해 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그럼요! 고민해 보시고 저한테 바로 연락 주실래요? 번호 알려드릴게요.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하나 둘 다른 수강생들이 스터디룸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시간의 강의를 하는 내내 이런 제안을 받은 것이 뿌듯하기도 하고 이직에 벌써 성공한 듯한 기대감에 붕 들뜬 상태로 있었다 – 수업이 다 끝나고 세영님이 지수님 오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물어볼 정도였다.
그날로부터 10일이 지난 오늘, 장장 2시간이 넘는 N사 최종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이다. 잘 본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긴장해서 준비했던 대답을 제대로 못 한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다. 일단은 너무 피곤해서 얼른 집에 가서 자야겠다 – 어제 퇴근하고 나서 면접 준비를 마무리하느라 한숨도 못 잤다.
3.
송년회 때 민재님이 미리 말씀하셨던 대로 우리 팀이 이번 어워즈의 커머스 파트 수상자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새 팀에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신이 나 있는 새로운 두 팀원 덕분이기도 하고.
민재님도 한껏 고양된 팀의 분위기에 좀 영향을 받으신 건지 표정이 평상시보다 훨씬 밝아지셨다. 이런 와중에 – 좀 안타깝긴 하지만 – 나의 퇴사와 이직 소식을 전해야 한다. 오늘은 말을 해야 적어도 남은 시간 동안 인수인계를 하고 다음 달부터는 새 회사에 출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마냥 미룰 수 없다.
N사로 가시는군요. 지수님의 팀 리더로서는 가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커리어 선배로서는 응원해야 마땅한 기쁜 소식이네요.
역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전전긍긍했던 지난 며칠이 무색하게도 쿨하게 작별하는 민재님이다.
지수님은 지금까지 만나 온 많은 후배들 중에서도 단연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말하는 것, 보여주는 것을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이고 또 그걸 금방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게, 나조차도 과연 저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보게 되더라고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지수님.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
아고, 왜 갑자기 눈물이 나오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서 눈물을 훔친다) 저도 감사해요, 민재님. 솔직히 민재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요 몇 달 동안 해온 새로운 도전과 성취가 제 삶에 없었을 거 같아요. 많이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민재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민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있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다 지수님의 역량이에요. 조금 있다가 다른 팀원들에게도 같이 이야기해요. 저는 먼저 일어날 테니 천천히 나오세요.
내가 다시 훌쩍이는 사이 조심스럽게 문을 여닫는 소리가 났다.
4.
1주일의 달콤한 휴가가 끝났다. 오늘은 신규 입사자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첫 출근 날이라서 느지막이 새 회사에 도착해 세미나실로 향했다. 나를 포함해 대여섯 명 정도가 앉아서 회사의 비전과 미션, 복지 혜택들을 비롯한 조직 문화 같은 것들의 설명을 쭉 듣는다. 한 시간 남짓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내가 앞으로 일하게 될 자리로 향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마지막 면접을 봤던 분이 나를 환영해 준다. 여성의류 팀의 리더님이다. 그리고 내가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손을 흔들고 있었던 나의 추천인 - 이자 세영님의 친구, 유진님이다 - 과 다른 팀원 세 명과도 인사를 했다.
지수님, 자리에 짐 놓고 같이 점심 먹으러 가요. 오늘은 지수님 환영식이라 다 같이 식사할 건데 평상시에는 자유롭게 드시면 돼요.
오후에 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아까는 텅 비어있던 내 책상에 인사팀에서 주는 선물 – 상자 안에 회사 로고가 박힌 텀블러, 펜과 노트, 슬리퍼가 들어있었다 – 과 함께 노트북, 듀얼모니터, 마우스도 가지런하게 세팅되어 있다.
노트북을 켜고, 오리엔테이션에서 안내해 준 대로 이것저것 시스템 환경을 설정했다. 다행히 슬랙, 아웃룩, 태블로 등 대부분 프로그램이 원래 회사에서 쓰던 것과 같았다. 익숙하게 첫날의 업무 – 라고 하기엔 아직 내게 배정된 일은 없다 – 를 시작해 본다.
태블로에 들어가서 여성의류의 1월 매출, 12월 매출, 전년 1월 매출을 조회해서 자료를 받았다. 엑셀을 열고 항상 해왔던 대로 여성의류의 1월 매출이 세부 카테고리별로 전년 대비, 전월 대비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하고 상위 브랜드와 베스트셀러 상품들도 함께 살펴본다.
5.
새 회사는 강남역 한복판에 있는데, 퇴근하고 나오니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이제 막 놀러 나온 사람들로 시끄럽고 분주했다. 핸드폰에 계속 알림이 와서 뭔가 보니 오랜만에 소라님이 내게 DM을 보내고 있다. 아까 책상에 올려진 입사 선물 상자를 찍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는데 그걸 본 것 같다.
원님에게는 민재님보다 조금 먼저 내 퇴사 소식을 알렸다.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던 원님은 이제 자격증 시험도 끝나서 지수님 만날 일이 없겠네요. 말하더니 계속 연락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당연히 당연하죠! 답했다. 그렇게 원님과 업무도 아닌, 자격증 시험 준비도 아닌, 처음으로 일상적인 연락을 시작했다.
새로운 회사, 새로운 관계, 내 새로운 모습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한 적 없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무엇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는지는 확실했다. 벌써 내일부터는 어떤 데이터를 분석해 볼지 이 팀에서는 또 어떤 재미있는 발견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지금까지 [말빨 말고 데이터로 살아남기]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