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결국 시간이 지나 읽을 수 없는 비문의 제형이 되어버렸다.
내 마음이 읽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무거운 가슴의 먹먹함은 한숨이 되어 배꼽까지 내려앉았다가 날카로운 울림이 되어 코끝까지 끌어 올라온다.
그럴 때면 난 이 알 수 없는 감정의 내 무의식을 글로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와의 하루라던가, 그 아이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아도 흐릿한 안갯속이다.
희미해진 그 기억들은 하나의 뭉텅이가 되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다가 결국 내 가슴을 때린다.
그 감정은 기쁨도 슬픔도 그리고 그리움도 아니다. 무언가 새로운 장르의 기분이다.
감정에도 신조어를 붙여 이 마음을 찰떡같이 표현해 낸다면 좋으련만
그저 답답할 뿐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기억은 흐려지지만, 그 농도는 짙어짐을 느낀다.
분명 잊힌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기억들은 내 몸 안에 달라붙어 오랜 시간이 지나 내 몸을 이루는 장기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게 틀림없다.
그 기억은 결국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나조차도 의식할 수 없어져버렸다.
숨을 쉬는 걸 매 순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잊혔다는 건, 구체화할 수 없을 정도로 몸에 배어 버렸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그래와서 더 이상 기록할 수 있는 제형이 아닌 물질이 되어버린 감정들
결국 읽어 낼 수 없어도 그것은 이미 내 안에 기록되어 있다.
그 읽어낼 수 없는 비문의 감정을 읽고 싶은 오늘.
결국 그 아이를 잊긴 잊었나 보다.
내 몸 어딘가에 배어버려 찾을 수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