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단순화되어 호불호를 나누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추억이라는 게 처음에는 사진같이 생생한 그림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화되어 스케치만 남는다.
이층 버스나 영국을 연상시키는 것을 보면 아련한 기분이다.
그 아이에게 받았던 메모리얼 체인과 비슷한 팔찌를 보면 자꾸만 사게 된다.
각진 얼굴의 남자들을 보면 인상이 좋다고 생각한다.
까만 뿔테안경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억은 그렇게 단순화되어 호불호를 나누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하나의 물건일 수도 있고, 지역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향기나 말투처럼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중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건 멜로디다.
도대체 어떤 노래가 추억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특정 멜로디 ( 일정한 음의 간격으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만 들으면 카타르시스를 느끼듯 코가 뻥 뚫리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이다.
라라랜드의 OST 중 미아와 세바스찬의 테마가 그러하다.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내려오는 그 멜로디에 가슴이 멎은 듯 아련하다.
도대체 무슨 멜로디에 대한 추억일까.
추억은 닳아 없어졌지만 미미한 자욱만 남아 약간의 단서로도 심장이 반응을 하는 것일까.
요즘 난 그렇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는다.
이미 내 몸에 스며들어 미미하게 남아있는 작은 추억의 자욱들에 집중한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가 작은 단서들로 기억이 떠오르듯
난 추억 상실증 환자다.
하지만 추억을 되찾으려 하진 않는다.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추억은 사라졌지만 그 자욱만으로도 충분히 이미 내 안에 스며든 것이기에
애써 다시 원형을 보존하려 할 필요까진 없다.
그 추억들이 모여 지금의 내 형상이 된 것이기에
그저 소중히 나 자신의 가장 작은 감정들에 집중하고 다독여줄 뿐이다.
그렇게 지켜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