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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배

장소에 대한 기억은 사람에 대한 기억인 것일까.

by 윤지아

출근길

오늘따라 부평구청역 플랫폼에서 레쓰비를 건네던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배는 우리가 같이 다녔던 회사의 출근길이었고,

난 이직한 회사로 가는 첫 출근길이었다.

선배는 인천방향으로, 나는 서울방향으로 가야 했다.

선배는 반대방향인 내가 있는 곳으로 바쁜 시간 수고스럽게도 넘어와 밝게 웃으며 따듯한 레쓰비를 손에 쥐여주었다.

그때 내 손에 쥐여준 것은 커피가 아닌 따듯한 마음. 걱정과 응원의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같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선배에게 많이 기댔고, 배웠고, 즐거웠었다.

그 일 많고 힘들었던 회사를 단순히 버텨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선배와 또 다른 동기들과 함께 즐겁게 보낸 시간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나보다 두 살 위였던 선배와는 참 많은 추억이 있었다.

시시콜콜한 연애사부터 개인 고민들까지 주고받던 사내 메신저 화면이 기억난다.

회식 때 술만 먹었다 하면 퇴근 후에도 연신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서는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했던 선배.

나를 여동생처럼 소중하게 대해 주고, 진정한 우정을 느낀다며, 자신의 삶의 가장 가까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던 선배.

2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스토리들이 있었지만, 막상 그 선배에 대해 떠오르는 얼굴은 그날 전철역 플랫폼에서의 그 장면이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살아온 나날들이 영화처럼 스토리로 기억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유독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는 것 같다.

문득문득 떠오르거나 꿈에 나오는 장면들 말이다.

굳이 왜 오늘 아무 연관도 없는 나날들 속에 갑자기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는 그런 장면이다.

심지어 그 장면들의 앞뒤 상황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 한 장면만큼은 살면서 지속적으로 이렇게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너무 스토리에 매달리며 살아왔다.

이력서에 쓰는 자소설만큼이나

스토리텔링으로 자연스레 이어져야 하는 경력의 연관성까지도 어떻게든 이어나가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죽을 때 떠오르는 건 이러한 한 장면장면들이 모인 파노라마일 것이다.

일관적인 스토리가 아닌, 살면서 가장 따듯했던, 잊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한 장면들의 나열 말이다.


그런 사진과도 같은 선배의 얼굴이 떠오르는 오늘 출근길 지하철역.

나도 모르겠다.

왜 오늘인지

왜 갑자기 그 장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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