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아 Oct 30. 2024

장갑을 잃어버리려면 두 짝 다 잃어버려라

그것이 장갑이든 기억이든 말이다.

나는 장갑을 자주 잃어버린다.

겨울이 오면 '장갑 꺼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어차피 잃어버릴 장갑 꺼내지 말자'라고 단념한다.

내가 장갑을 잃어버리는 것이 싫은 이유는 단지 상실감 때문은 아니다.

내 몸에 잠시라도 붙어 있었던 무엇인가가 길거리에 나도 모르게 나뒹굴고 있을 거라는 그 사실이 싫은 것이다.

잃어버리자마자 '아차' 하는 탄식과 함께 그것을 잃어버린 장소에 놓여있을 장갑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다.

내 것이었던 것이 누군가에게 밟히고, 차에 치이며 여기저기 굴러다닐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런 죄책감을 더 크게 만드는 건 바로 남아있는 한 짝 때문이다. 차라리 양쪽 다 잃어버렸다면, 그 죄책감은 덜하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주워가서 사용이라도 해준다고 생각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가끔 잃어버려도 남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물건은 더욱 그렇다. 우산처럼 말이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서 요긴하게 쓸 생각을 하면 오히려 그 모습을 상상하며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퇴근길 3호선에서 7호선을 갈아타는 긴 레일워크에 떨어져 있는 엄지손가락만 회색인 까만 장갑 한 짝을 보았다. 보자마자 평소처럼 '어이쿠' 하며 측은하게 그것을 바라보며 지나쳤다. 그런데 몇 걸음도 가지 않아 반대쪽 장갑도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다가 김 빠진 웃음이 나왔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끙끙 앓으며 반쪽의 마음을 간직하고 사느니 놓아버리고 거기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

그 죄책감은 자기 스스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잃어버릴 거면 다 잃어버리는 게 낫다.

장갑이든 기억이든

이전 14화 아무 생각 없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