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장갑이든 기억이든 말이다.
나는 장갑을 자주 잃어버린다.
겨울이 오면 '장갑 꺼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어차피 잃어버릴 장갑 꺼내지 말자'라고 단념한다.
내가 장갑을 잃어버리는 것이 싫은 이유는 단지 상실감 때문은 아니다.
내 몸에 잠시라도 붙어 있었던 무엇인가가 길거리에 나도 모르게 나뒹굴고 있을 거라는 그 사실이 싫은 것이다.
잃어버리자마자 '아차' 하는 탄식과 함께 그것을 잃어버린 장소에 놓여있을 장갑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다.
내 것이었던 것이 누군가에게 밟히고, 차에 치이며 여기저기 굴러다닐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런 죄책감을 더 크게 만드는 건 바로 남아있는 한 짝 때문이다. 차라리 양쪽 다 잃어버렸다면, 그 죄책감은 덜하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주워가서 사용이라도 해준다고 생각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가끔 잃어버려도 남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물건은 더욱 그렇다. 우산처럼 말이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서 요긴하게 쓸 생각을 하면 오히려 그 모습을 상상하며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퇴근길 3호선에서 7호선을 갈아타는 긴 레일워크에 떨어져 있는 엄지손가락만 회색인 까만 장갑 한 짝을 보았다. 보자마자 평소처럼 '어이쿠' 하며 측은하게 그것을 바라보며 지나쳤다. 그런데 몇 걸음도 가지 않아 반대쪽 장갑도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다가 김 빠진 웃음이 나왔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끙끙 앓으며 반쪽의 마음을 간직하고 사느니 놓아버리고 거기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
그 죄책감은 자기 스스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잃어버릴 거면 다 잃어버리는 게 낫다.
장갑이든 기억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