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1년이 지났다. 작년 8월, 6년의 대학원생 신분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6년’이라는 시간이 활자로 보니 이렇게 가볍고 허무할 수가 없다. 실제로 그 6년은 그렇게 간단한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그곳은 나와 기본적으로 결이 달랐다. 유명한 저널에 논문을 내는 사람들, 뼛속까지 과학자인 사람들, 연구와 삶이 일체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썼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저명한 저널지에 실린 연구 논문과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인정과 같은 것으로 성공이 정의되는 곳에서 나는 내 능력과 쓸모를 증명하는데 필사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주변인들과의 비교와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은 습관이 되었고, 멈출 수 없는 굴레에 갇혀 계속해서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그토록 고대했던 학위를 손에 쥐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 인재라는 상당히 고무적인 졸업 축하 연설을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나를 미워하다 못해 결국 나를 잃어버렸다고.
사람들의 인정이나 가시적인 결과물 없이는 스스로를 칭찬하기 어려웠다. 다른 이들과의 비교에서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패자가 되는 쪽을 택했고 마치 어떻게 하면 더욱 철저하게 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 생명과학이 아니라 자기 질타와 자기 비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정도였다.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했어야 하는 일이었을까로 시작된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애당초 정답이 있는 질문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를 잃어버린 것은 결국 필연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대학원 이전에도 나는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기보다는 주로 남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살아오는 쪽을 택해왔기 때문이다. 단지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었다. 대학원에서 6년 동안 쌓이고 쌓여 결국 사달이 난 것이지 사실 언젠가 터질 문제였던 것이다. 가끔 기분이 축 처져 기분 전환하러 들어간 카페에서 나는 무엇을 주문해야 기분이 좋아질지 몰랐고, 시간은 있어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할 일 목록은 숨도 쉬지 않고 눈 깜짝할 새 10가지도 적어 내려갈 수 있었지만, 하고 싶은 일 목록에는 ‘1.’ 다음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애꿎은 손만 쥐었다폈다할 뿐이었다. 항상 남들의 칭찬에 목말랐고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했다. 때문에 무조건 최고가 되어야지만, 완벽해야지만 직성이 풀렸고 한치의 부족함도 용납할 수 없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는커녕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난 나의 이상 속에만 존재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를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다 당연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일상 속 모든 순간, 나는 나를 만난다. 짧은 찰나의 순간 스치는 생각에서, 남에게 내보이기 부끄러운 나만 아는 나의 치부에서, 그리고 밤잠 설치며 고민하는 만드는 문제에서. 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물건들에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예상치 못한 웃긴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들에서.
소설 <데미안>에서 말하길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이라는데, 최소한 내 인생에서는 그렇다. 물론 세상의 기준에 나를 끼워 넣는 것도 굉장히 고통스럽다. 사람들의 부러움과 인정이라는 달콤하고 중독적인 보상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그 모든 것을 거절하는 '용기' 가 필요하다. 내 영혼 구석구석의 용기를 긁어모아 마침내 조심스러운 여정을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낯선 사람,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 나에게 닿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놓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