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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Jan 04. 2024

겨울방학, 도서관에 다녀오는 마음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시간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내가 사는 지역은 봄방학 없이 두 달간의 방학이 이어진다. 아이들이야 신이 나겠지만 하루종일 두 아이와 부대끼며 삼시 세 끼에 간식까지 챙겨야 하는 이 엄마로서는 반갑지 않은 시기다. 어린이에게 방학은 부모의 개학이라고 하지 않던가. 생각만 해도 입에서 쓴 맛이 난다.


어찌 됐든 방학은 시작됐으니 무엇을 해야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까 고민할 차례다. 계획을 세우려면 먼저 이번 겨울방학의 목표를 정해야 했다. 이건 다소 엄마 위주의 목표지만 인성, 자주(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함), 독서가 이번 겨울방학의 가장 큰 목표다. 큰 아이가 6학년이 되기에 공부를 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보다 이 세 가지의 테마를 가장 염두에 두고 계획을 하는 것이 엄마로서 내세운 조건이다.


부모와 함께 따뜻한 유대의 시간을 갖고, 뭐가 됐든 스스로 계획하고 도전해 결과까지 만들어 내는, 그래서 작더라도 단단한 성취감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게 엄마의 바람이다. 너무 어려운가^^;;

"우리 방학에 뭐 할까~?"

아이들과 고민 끝에 정한 이번 방학의 메인 프로젝트는 '도서관'이다. 도서관 오픈런하기! 아침밥을 먹자마자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마침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어서 가볍게 산책을 하기에도 좋은 코스다. 엄마는 '매일'을 원하지만 주 2회로 타결!

우리가 도서관 가기에 만장일치 합의를 본 것은 지난 여름방학의 기억 덕분이었다. 4주가 채 되지 않은 방학 동안 주 3회 도서관에 갔다. 집중력이 길지 않은 아이들의 성화에 겨우 1시간 정도 머무는 수준이었지만 스스로 계획하고 수행했다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었다.


도서관의 문이 열리는 오전 9시. 그날의 첫 이용자로 도서관에 발을 들이는 기분이 좋았다. "오~. 오늘 우리가 1등인가 봐~!" 아이들도 신기하다며 눈을 반짝였다. 이게 바로 오픈런의 백미겠지. 누군가는 원하는 물건을 빠르게, 품절되기 전에 손에 넣기 위해 서두르겠지만 우리는 도서관의 1번 이용자가 되기 위해 서둘렀다.


"방학에 도서관 다니는 거 어땠어?"
"재밌었어."
"집에 없는 설민석 한국사 만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보고 싶은 책을 빌릴 수 있어서 좋았어."
"도서관에서는 숙제도 잘 되는 것 같아."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짧은 시간에도 아이들은 그곳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집에서와 달리 책보기도 숙제하기도 수월했단다. 방학을 마치면서는 '매주 도서관 프로젝트를 잘 해냈다'는 큰 결실까지 맺었으니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더 단단한 어른이 될 수 있겠지.

내게도 도서관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을 먹기에 최적인 곳이다. 특히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도서관은 읽거나 배우거나 쓰고 싶다는 동기를 불러오는 화수분이 된다. 이미 마흔을 넘은,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라는 한계도 그곳에선 연기처럼 사라진다. 오히려 '아직 늦지 않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야.'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두가 나처럼 오픈런이라도 하려는 건지 이른 시간에도 성인 열람실에는 책을 보거나 신문을 읽는 어른들이 많다. 특히 이어폰을 꽂고 동영상 강의를 보며 열정을 불태우는 어른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미 머리에는 서리가 가득한데 그들은 무슨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는 걸까. 그분들을 보면 마흔의 나이를 탓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숨만 쉬어대던 나를 꾸짖지 않을 수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부한 표현이 얼마나 진실된 말인지 깨닫는다. 그게 또 어찌나 감동인지, 가끔은 찔끔 눈물이 맺혀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도서관에 가면 눈에 들지 않던 책도 읽고, 쓸 수 없어 망설였던 글도 쓴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의지에 불탄다.

어린이 열람실이라고 다를까. 부모가 골라주는 책을 함께 읽는 어린아이부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직 독서 습관이 잘 잡히지 않은 나의 아이들에게도 독서와 공부에 대한 열의가 피어난다. 아이들도 분명 도서관의 분위기 자체가 주는 기운을 느낀 걸 테지. 그래서 좋다, 도서관이란 장소가.


우리가 정한 목표는 주 2회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오픈런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아침밥 먹자마자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가볍게 걸어가는 것.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빌려오고, 해야 할 공부나 숙제를 하는 것. 가끔은 친구를 만나기도 하는 것. 멍하니 있더라도 일단 가는 것. 그래서 새학기가 시작될 즈음엔 내가 정한 계획을 잘 실행했다는 성취감을 얻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오늘, 2023년 겨울방학 중 처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오픈 시간보다 겨우 10분 늦었을 뿐인데 이미 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린이 열람실에서, 나는 성인 열람실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못 본 한국사 시리즈가 있었거든. 근데 그 책이 딱 있는 거야. 완전 놀랍지 않아~?"

한국사를 좋아하는 큰 아이가 보고 싶었던 한국사 만화를 봤다며 좋아했다.

"내가 빌린 오즈의 마법사 보실래요~? 그림이 완전 귀여워~"

귀여운 것 좋아하는 작은 아이는 많고 많은 오즈의 마법사 책 중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체의 책을 빌려와 신이 났다.

"엄마는 오늘 오랜만에 글쓰기를 좀 했어. 이상하게 도서관에서는 뭘 막 하고 싶어 져."

'뭐라도 도전하자. 일단 시작하자.'는 2024년을 계획한 나는 브런치에 쓸 글의 기초를 세웠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에 저마다의 즐거움이 묻어나는 방학의 시작이었다. 어쩐지 달달한 방학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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