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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Feb 01. 2024

사교육에 무지한 엄마

사교육 무식자의 사교육 유람기

고백한다. 나는 사교육 무식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그래서 용감했다. 어쩌면 지금도 일부 용감하지 않을까 싶지만.


나처럼 피눈물 나는 후회를 할까 봐, 아직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이지 않은 후배 부모들을 위해 사교육 무식자로서 겪은 다섯 가지 오류를 공유한다.


Image by Art-x A.I artxai from Pixabay

내 아이에게 실시한 첫 사교육의 기억은 큰 아이가 5살 때였다. 같이 놀던 아이의 친구들과 우르르 한 학습지 센터에 테스트를 받으러 가면서 시작됐다. 사교육엔 1도 관심이 없던 내 무식함이 탄로 날까 봐, 또 그들(학습지 센터의 들)의 말에 겁을 먹어 덜컥! 사교육에 발을 들였다. '사'자는 '죽을 사'와 '숫자 4'밖에 모르던 초보엄마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라도 알았어야 했다. 그때라도 알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사교육에 대해. 나는 너무 안일했고, 다시 얘기하지만 무식했다. 이건 ing다.


사교육 무식자의 오류 1

시키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학습지 센터에서 나를 충격에 빠뜨린 말은 이거였다.


"아이가 엉덩이 힘이 너무 부족해요. 이렇게 되면 학교 들어가서 어쩌고 저쩌고~"


그 이후의 얘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그러니 이 학습지를 시켜야 한다'는 말이었겠지. 그의 말은 내게 적중했다. 무슨 창의력 발달 류의 학습지를 신청했던 것 같다. 평소에 가정에서 일정량을 하면 주 1회 선생님이 방문해서 15분 정도 시간을 함께 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놀이 위주의 학습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7살 무렵 한글공부로 학습지를 변경했다. 아무래도 남자아이라 언어가 느릴 것이 우려된 데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한글을 떼는 게 좋겠다 싶었던 까닭이다.


좋다. 시킬 수 있지! 문제는 시키기만 했다는 데 있다.


"선생님. 저는 집에서 공부 못 봐줘요. 그래서 이거(학습지) 하는 거고요."


무식은 나를 당당하게 하는 무기였다.

몰랐다. 학습지를 하든 학원에 다니든 가정에서 봐줘야 한다는 것을. 그냥 시키고 보내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한글이 어설픈 상태로 초등학생이 됐고, 여전히 맞춤법, 띄어쓰기 등등의 영역에서 내 뒷목을 잡게 한다.


어쩌랴. "남자애들은 초등 졸업하고 중학교 가야 좀 뗀다더라"는 확신할 수 없는 말에 기댈 수밖에.


내 잘못이다. 무식했다. 내가 같이 챙기고 봐줘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이건 한동안 아이와 내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문제가 된다. 아이가 초4 정도 됐을 때에야 깨달았지, 아마.




사교육 무식자의 오류 2

예체능도 시키면 다 잘하게 될 줄 알았다


아이가 1학년 때 주 1회 수영, 주 2회 축구를 다녔다. 예체능은 저학년 때만 할 수 있다는 주위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던 때이고(이건 지금도 여전히! 확실히!) 첫째다 보니 많은 것을 지원하고 싶었던 때였다. 수영 잘 하는 동네 오빠, 축구 잘 하는 동네 오빠를 꿈꿨던 당시의 나는 정말 엄청 무식했다.


수영은 8~9개월, 축구는 1년 6개월 정도 한 것 같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사태로 그만둘 때까지. 수영 다니기 전까진 물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잠수왕이 됐다. 축구는 재능 있는 게 아닌 이상 어차피 뛰면서 에너지 발산하는 목적이었다. 그랬다. 그것뿐이다.


내 잘못이다. 무식했다. 보내면 다 잘하게 될 줄 알았다. 수영을 다니면 자유형 정도는 식은 죽 먹기로 하고, 축구를 다니면 손흥민 정도는 아니더라도 '공 좀 차는 아이'가 될 줄 알았다.


예체능이 저학년의 특권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짧게 할 생각이라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선배부모들은 최소 2년 이상은 지속해야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러려나. 개인적으로 태권도, 인라인 같은 것단기적인 효과가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사교육 무식자의 오류 3

모두가 좋다고 하니 내 아이에게도 좋을 줄 알았다


이건 내가 가장 중요하게 깨달은 점이다. 그리고 지금도 가장 염두에 두는 조건이고.


코로나로 격리생활을 하던 2년 여의 시간.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교육을 모두 중단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가 다시 사교육을 시작한 때는 4학년 2학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간의 경험으로 '공부 사교육은 일찍 시켜봤자 소용없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영어는 5학년쯤, 수학은 6학년쯤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세상 일이란 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이는 멍 때리기 스킬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매번은 아니지만 종종 그랬던 모양이다. 아이와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이 상황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뭘까.


영어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부랴부랴 알아보는데 사교육 무식자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전국 체인의 대형학원에 등록했다. 대형이니 그만큼 시스템도 잘 돼 있고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로 아이는 영어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재밌어했다. 확실한 변화였다.


분명 초반에는 그랬다. 상위 클래스로 이동할수록 버거워하는 아이의 모습도 분명했다. 한 반을 구성하는 15~16명의 학생 수, 감당하기 힘든(혹은  싫은)숙제의 양. 아이와 맞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내 아이에게는 소규모의 밀착 수업이 맞다는 것을.


한 번 시작한 사교육은 끊으면 돈만 아까울 테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년 가까이 격려와 응원과 지지 같은 것을 하다가 화도 고 혼도 냈다. 아이도 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맞았다.


서너 달 쉬다가 아파트 단지 내 새로 생긴 영어 공부방을 발견했다. 전단지를 보고 아이도 관심을 가졌고. 같이 상담을 받아 보니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소규모였고, 밀착/수준별 맞춤 수업이 가능했다. 아이도 흔쾌히 다니고 싶다고 했다. 고맙게도 5~6개월째 열의를 갖고 다니고 있다.


내 잘못이다. 모두가 좋다고 해도 내 아이에게 맞지 않으면 미련을 두지 않아야 했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당연히 좋겠지', '그런데 너는 왜 힘들다고 유난이니' 생각했던 나를 반성한다.


아이는 대형보다는 소규모 분위기에 맞는 아이였다. 다행히 그런 곳을 만나 지금은 영어에 자신감 넘치는 아이가 됐다. 소규모로 수업하는 곳이니 수준별 맞춤 수업과 강사의 즉각적인 칭찬, 편안한 분위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덕분에 학교에서의 수업 태도도 좋아졌다.


Image by Angel Hernandez from Pixabay


사교육 무식자의 오류 4

엄한 선생님이 효과도 좋을 줄 알았다


아이는 주 2회 농구학원에 간다. 이것만은 꼭 지켜주기로 했다. 같은 학원, 같은 시간! 이건 아이와 새로운 사교육을 시작할 때 약속했던 부분이다. 그게 문제였다. 농구학원에 가는 시간이 애매해서 그날에는 다른 사교육을 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학 같은 것 말이다.


월수금에는 영어, 화목에는 수학. 내가 생각하는 딱 이상적인 사교육 일정이다. 공부 학원은 하루에 한 군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언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수학 사교육이 필요한 시점인데 농구 시간이 걸려서 시작할 수 없었다. 아이의 일정에 맞출 수 있는 사교육, 과외뿐이었다.


몇몇 강사 상담 끝에 한 선생님과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엄할 것 같은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엄하기 때문에 아이를 잘 잡아 줄 것이라 생각했다. 주로 상위 클래스 아이들을 지도했다는 스펙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선생님과 아이의 궁합을 먼저 살폈어야 했다.


첫 수업부터 강사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곧잘 짜증을 냈다. 신경질이 섞인 음성과 내용이 공부방의 닫힌 문을 뚫고 흘러나오기도 했다. 밖에서 듣고 있기에도 민망했다. 모르는 척하고 수업에 녹아 들지 못하는 아이만을 탓했으나 매 수업마다 그러니 화가 났다. '내가 내 아이 저런 취급받으라고 이 큰 돈을 써야 하나' 자괴감을 수십 번 느끼던 날, 수업 중단을 선언했다. 과외 수업이 끝나면 곧잘 울던 아이의 얼굴을 나약하다며 외면했던 나를 꾸짖으며.


"우리 다시 너에게 맞는 곳을 찾아보자."


몇 달 후에 바로 옆 단지에 새로 오픈했다는 수학 공부방에 상담을 갔다. 소규모였고, '선행보다 탄탄한 기본기'라는 내 생각과 선생님의 교육 마인드가 잘 맞았다. 아이의 진도에 맞춰 진행되는 것도 좋았다. 덕분에 아이도 열심히 다니는 중이다.


내 잘못이다. 사교육의 '사'자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아이를 고생시켰다. 좀 더 빠르게 결단을 내렸으면 좋았겠지만 과외를 했던 두 달 동안 얻은 것도 있다. 아이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수업 방식은 내가 먼저 거절할 거라는 확신.




이렇게 여러 실패의 경험이 있었지만 실패한 실패가 아니라 배우는 실패였다고 믿는다. 덕분에 아이의 성향을 찾았고, 아이와 많은 대화를 했고, 스스로도 마음을 다질 수 있게 됐다. 내겐 여전히 수많은 오류가 있겠지만 발견할 때마다 하나씩 고쳐 나갈 것이다.


이제 아이의 사교육에 대해

다수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아이 위주로 선택하겠다.

가정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적당한 관심으로 동기를 부여하겠다.

아이의 작은 성취에도 기쁨을 함께 하겠다.


Image by Денис Марчук from Pixabay


아이는 올해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다. 배움의 길은 아직 길고, 제대로 된 길에 발을 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나는 어떤 길을 어떤 모양으로 가게 될까. 부디 그 길이 아이를 위한 길이 되길, 어떤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단단함이 내게도 아이에게도 충만하길, 그리하여 아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길. 2024년 2월의 첫날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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