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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Jan 25. 2024

아침밥을 먹으며 저녁밥이 궁금한 이유

똑같은 일상의 유일한 재미

"엄마. 오늘 저녁밥 뭐야?"

아침밥을 먹는 아이가 묻는다. 나는 답한다.

"양념고기나 볶아 먹을까? 냉동해 둔 거 있거든~"


"엄마. 내일 아침(밥) 뭐야?"

저녁밥을 먹자마자 설거지를 하는 내게 아이가 묻는다.

"밥이랑 반찬"

무심히 답하면 아이는 다시 묻는다.

"무슨 반찬?"

"그냥 콩나물 두부 그런 거."


두어 시간 후 잘 준비를 하던 아이가 또 묻는다. 벌써 서너 번째다.


"엄마 내일 아침밥 뭐야?"

"밥이랑 반찬이라고!! 아까 그렇게 말했는데 왜 또 묻는 건데!!"


걸신이라도 들린 걸까. 아이는 아침밥을 먹으며 저녁밥이 궁금하고, 저녁밥을 먹으며 다음 날 아침밥과 점심밥이 궁금하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같이 똑같은 질문을 하는 통에 나도 예민해져 칼날 같은 말이 던져진다.


대체 왤까.

머릿속에 먹는 생각밖에 없는 걸까.


씩씩대며 깊은 한숨을 쉬는데 불현듯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기억은 내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로 이동한다.


Image by Ballart from Pixabay


급식시간을 앞둔 4교시 수업시간. 수업 종이 치기 5~10분 전부터 엉덩이가 들썩인다. 슬슬 다리 한쪽을 책상 밖으로 빼놓는다. 종이 치자마자 달려 나갈 기세로.


띠리리링~


종소리가 시작되자마자 후다다닥!


식판을 들고 급식통 안을 들여다보던 그 시간을 하루 중 가장 좋아했다.


공부 공부 또 공부를 해야 했던 그때 나는 고슴도치 같았다. 늘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 예민한 고슴도치. 비슷한 고슴도치들과 한 우리에 갇혀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경쟁을 했다. 친한 친구조차 때로는 경쟁자였다. 그래서 괴로웠다. 


매일이 그랬다. 시간은 흐르고 달력은 다음 장으로 넘겨지는대도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겨우 숨을 이어가던 시절, 재미는 먹는 것으로 귀결됐다. 쉬는 시간 친구들과 매점에 모여 빵을 사 먹으며 깔깔대던 시간과 급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던 시간이 유일하고 확실한 재미였으니까.


매점으로 달리는 마음과 빨리 급식을 먹겠다며 다리를 빼놓던 마음은 행복과 닿아 있었다. 오늘 매점엔 내가 좋아하는 빵이 있을까 설렜고, 그날의 급식 메뉴를 확인하는 것을 즐거웠다. 그건 답답한 가슴을 부풀리는 신선한 공기였다.


초등학생인 나의 아이들도 어쩌면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학교 갔다 학원 가고. 돌아와서는 숙제 폭탄까지 처리해야 하니까. 그 와중에 숙제를 스스로 잘 챙기지 못한다는 잔소리를 듣고.  방학이라고 다를까.


과거의 내가 느꼈던 재미없고 답답한 일상을 아이도 벌써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어쩌면 쳇바퀴 같은 하루를 보내며 아이 역시 재미라고는 밥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게 아이에겐 유일한 행복일 수도.  생각이 그곳에 이르니 고작 밥이 뭐냐고 묻는 아이에게 인상을 쓰던 내가 몹시도 부끄럽다.


아이의 재미를 지켜주기로 했다. 

이젠 아이가 묻기 전에 말한다.  미리 식단표를 짜면 좋으련만 닥쳐야만 움직이는 성향의 어미인지라 아직은 무리다. 대신 다음 날의 식단 정도는 미리 얘기하려고 한다. 같이 상의해서 정하기도 하고.


어제저녁. 아이들과 밥을 먹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엔 간단히 떡국 해 먹을 거고, 점심은 생선 구워서 김치랑 시금치랑 같이 먹자. 저녁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최대한 그걸로 준비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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