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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Jan 18. 2024

어린이 상담센터에서 알게 된 6가지

더 나은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중

약 1년 반동안 지속해 온 아이의 상담 치료가 종료됐다. 상담사도 나도 아이도 만족스러운 헤어짐이었다.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개선된 것은 확실하니까.




"아이가 너무 크게 화를 내는 것 같아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된다고 해요. 그게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너무 억압해서 분노가 쌓이니까 한 번에 폭발하는 게 아닐까요?"


상담센터 방문 첫날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세상이 무너질 듯 괴로웠다. 내가 아이를 망쳤다는 마음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데 피할 수가 없었다. 온몸으로 그것을 받으며 깊은 물속에 빠진 듯 숨이 막히는 고통을 느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잘못이니까 숨거나 회피하는 건 비겁했다.


사건의 발단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학교에서 반 대항 단체 줄넘기 시합이 예정돼 있었다. 아이는 자주 줄에 걸렸고 몇몇 친구들의 질타와 놀림, 욕설이 반복됐다. 걸리지 않고 이기고 싶은 친구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 편만 들어주기는 애매했다.


"그랬구나. 하지만 친구들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거니까 네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대신 연습을 더 해 보자."


공감이 부족했다. 그것보다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만을 강요했다. 어찌 됐든 큰 소리가 나면 안 되는 게 맞으니까. 놀림을 참고 쌓아두던 아이는 결국, 터지고 말았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사건은 단지 도화선이었을 뿐이다. 유아기 때부터 잘못된 내 육아방식이 문제였다.


또래보다 덩치가 큰 아이는 하지도 않은 행동에 대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었고, 남의 시선에 유난히 예민한 나는 오해받지 않게 하려고 강압적으로 단속했다.


"누가 밀어도 넌 절대 밀면 안 돼. 그냥 참아."

"누가 때리더라도 넌 절대 안 돼. 다른 사람 몸에 손가락 하나 대서는 안 돼. 그냥 그런가 보다 해."

"누가 때리거나 밀어도 너는 말로 해. '하지 마','아파'라고 말로 해."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억울함보다 타인의 시선이 무서워 혼내고 억압했다. 오해받는 일이 생길수록 억압은 더 강해졌다. 그저 남들보다 좀 큰 아이를 키우는 업보겠느니 생각했다. 그러느라 이 마음에 쌓이고 있는 억울함과 설움은 보지 못했다.


Image by Juanita Mulder from Pixabay


아이의  담당 상담사는 "저도 덩치가 커서 아이가 어떤 놀림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걸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어머님께서 먼저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세요. 그 후에 대안 방법을 알려주시면 돼요."라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짚어냈다.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른다.

계속 쌓이는 감정은 마그마처럼 끓어올라 터진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다.


부정적인 감정을 바로바로 표현하고 공감받으며, 스스로 성취하는 경험을 많이 쌓아 자존감을 높이는 치료가 진행됐다. 꽤 긴 시간 이어진 상담으로 나도 변했다. 아이에게 공감하고, 문제 상황에서 최대한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수차례의 상담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 싶다.


부정적인 감정은 표출해야 건강해진다

아이의 긍정적인 감정에는 큰 공감과 응원이 있었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차단됐다.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하니!"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감정 자체가 불순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쌓아두기만 했으니 폭발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이가 안 좋은 감정까지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그 방법이다. 그게 세상 어려운 일이지만.



'선공감 후대안'의 방식으로 대화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 감정에는 공감이 선행돼야 한다. 감정을 알아주고 보듬어 준 후에 화를 내는 것 대신 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부모가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아이가 어려워할 경우에는 부모가 몇 가지의 방법을 제시해 선택하게 다.


아이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뭔지 모를 수도 있다. 이때는 '속상했구나~', '창피했구나~', '민망했구나~'와 같이 감정의 종류를 알려준다.



강압적인 지시 대신 협상을 한다

밥 먹기나 공부와 같이 아이가 하기 싫어하지만 해야 하는 것들로 생기는 부모-자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다.


지시대신 협상을 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이제 공부해!". "밥 먹을 시간이야!"보다 "몇 시부터 공부할 계획이니?", "밥은 언제 먹을까?" 식으로 아이의 의견을 묻고 부모의 생각을 얘기하며 절충안을 찾는다.



작은 성취에도 크게 응원한다

지속적으로 작은 성취를 쌓는 것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이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아이의 수준을 파악해 그것보다 살짝 낮은, 실현 가능한 과제를 준다. 해냈을 때는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래 아이들이 한 번에 30분 이상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수준이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면 '10분 앉아서 책을 읽는다'의 가벼운 과제부터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제의 난도는 아이의 수행능력과 비례하게 높이면 된다.



부모의 멘탈 관리도 중요하다

센터 방문 첫날 질문지를 작성한 후 부모 상담이 먼저 이뤄졌다. 상담사는 아이보다 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게 더 급하다고 얘기했다. 주양육자인 나의 스트레스는 아이에게 투영될 수밖에 없으니까. 알고 있었다. 내가 화가 많고 소리를 많이 질렀다는 것을.


한동안은 내가 아이를 망쳤다는 죄책감이 몹시도 무거웠다. 안 그래도 쌓여 있던 스트레스에 '나는 나쁜 엄마야'까지 더해지니 하루하루가 괴롭기만 했다. 상담사에게 배운 방법과 반대되는 행동을 한 날에는 내 자신이 끔찍하기까지 했으니까.


상담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기에 회피했던 것들이었다. 나를 옥죄는 것들로부터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고, 반갑게도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의 무게가 줄었다. 



상담센터에 가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상담센터를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놀리고 욕한 아이들에게도 문제가 있을텐데 이 아이에게만 화살이 쏟아지는 것 같아 못마땅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비용도, 시간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주고 단단하게 만들어 억울함이 다시는 쌓이지 않게, 쌓이더라도 조금씩 더디게 쌓이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 여겼다. 아이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로 했다.


상담센터에 다닌다는 걸 숨기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아이에게 굉장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게 싫었던 탓이다.


상담을 통해 마음을 내려놓으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아이와 비슷한 이유로, 혹은 다른 이유로 상담센터에 간다는 또래의 아이들이 보였다.



Image by Juanita Mulder from Pixabay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왜 실천은 이리도 힘든 걸까. 이론이라는 게 이토록 실전과 괴리가 있었나.


아이에게는 곧 사춘기가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이미 사춘기인지도 모르겠다. 상담은 종료됐지만 위의 사항들을 계속 기억하고 실행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이유다. 비록 그렇지 못한 때도 있지만 노력은 나와 아이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거라 믿는다.


깊은 물속에 빠져 숨이 막힐 것 같았던 나도 이제 제법 숨비소리를 낼 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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