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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Jan 11. 2024

엄마는 단지 부캐여야 했다

나를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

힘들다. 우울하다. 외롭다.

오랜만에 펼친 10년 전 나의 글들이 소리쳤다. 그건 나에게만 들리는 울음이었다. 


두 아이, 독박육아, 전업주부. 그게 나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얼렁뚱땅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벅차게 감사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엄마라는 이름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던 것 같다.


안 그래도 바쁜 남편은 둘째 출산 이후로 더 바빠졌고, 나는 몸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두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살피고 남편을 챙겨야 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건 없었고, 그래서 나를 향한 시선과 한숨에 주눅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공기가 너무도 차가워 얼어붙을 것 같은 날들이었는데 모두가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했다. 힘들다는 말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엄마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남편은 나가서 노는 줄 아냐!

혼자만 애 키우는 것도 아닌데 왜 유난이야!

저런 것도 엄마라고 애를 낳아서는!

애들이 불쌍하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수렁으로 끌어당겼다. 그게 우울의 모습인지 몰랐다. 나는 나를 볼 수 없기에 내가 어떤 얼굴로 버티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조차 인지하지 못한 우울은 곧잘 아이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그게 또 참을 수 없이 괴로워 수렁 더 깊숙이 빠져들곤 했다.


손가락질받지 않으려 나를 감추고 포장하기에 바빴다.


애 키우는 게 다 그렇죠.

저만 힘든 것도 아니고요.


뭐 어때! 괜찮은 척하는 내 안에는 울고 싶은 내가 있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을수록, 잘 키우는 엄마가 되고 싶을수록 부족한 나만 보였다.  이것저것 해달라 수시로 울어대고 맘에 안 들면 또 생떼를 쓰며 드러눕는 아이들 틈에서 나도 서러운 눈물을 토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허락된 건 언제나 깜깜한 밤 울며 후회하고 반성하는 버려진 시간뿐. 


누구도, 심지어 가장 가까워야 했다고 여긴 남편에게조차 철저하게 외면당했다고 느낀 나는 '어차피 혼자니까. 하루이틀 이런 것도 아니니까.'라며 더 짙은 우울에 잠식당했다. 죽고 싶은데 죽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쌓여갔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힘들고 우울하고 외로운 감정이 사실 '공감받고 싶다', '위로가 필요하다', '칭찬받고 싶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Image by Duckleap Free Resources from Pixabay

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때의 내가 된다면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 나를 안아주기.


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을까. 왜 '잘' 키우는 엄마가 되고 싶었을까. 왜 매번 한없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을까. 그것보다 '나' 자신이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앞서 나를 돌봐야 한다는 것을. 엄마는 오로지 나의 부캐여야 했다.


누구의 마음을 구하는 대신 '오늘도 나 참 수고했다', '내일은 나를 조금 더 아껴주자' 나 스스로에 공감하고 나 자신을 위로하고 칭찬하고 응원할 것이다. 어떤 드라마의 대사처럼 꼭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


나처럼 힘들지만 감추느라 얼음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어떤 엄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지 마세요. 우리는 '그냥' 엄마이면 족합니다. 그러니 그 마음을 자신에게 나눠주세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안아주고 사랑해 주세요. 충분히 잘해나가고 있다고 칭찬해 주세요.

Image by Bianca Van Dijk from Pixabay


최근 읽고 있는 책 질문이 될 시간(임희정 지음/ 수오서재)의 인상 깊은 문장을 함께 전한다. 


"무엇보다 엄마가 건강해야 하고,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아이가 간절하고 아이가 소중해서 자꾸만 잊게 될 테니 반복해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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