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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Feb 08. 2024

엄마의 성적표

너의 성적보다 중요한

"얘들아, 모여봐~. 지금부터 엄마의 성적을 매겨줘. '밥 해주기', '공부 봐주기', '돌보기', '기타' 영역에서의 성적을 '매우 잘함', '잘함', '보통', '노력요함'으로 나눠서 평가해 줄래?"


"그걸 왜 하는데~?"


"갑자기 궁금해서."


두 아이는 내 질문에 몹시 당황해하더니 1호가 먼저 답했다.


"다 매우 잘함인데 기타는 잘함."


"그래? 기타는 왜 잘함이야?"


"자꾸 화내니까."


"오케이~. 너의 의견 접수!"


2호는 밥 해주기와 돌봐주기 영역에선 매우 잘함을, 공부 봐주기와 기타 영역에선 잘함을 줬는데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보통까지는 아닌데 매우 잘함은 아니라고.


"근데 이거 왜 물어봐~"


"엄마도 엄마의 성적을 알아야 부족한 것을 고치고 보완해서 매우 잘함으로 갈 수 있으니까. 너네도 성적표 받고 매우 잘함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Image by Pete Linforth from Pixabay

방학식 때 받아오는 아이의 생활통지표는 뜨거운 감자다. 궁금하지만 보고 싶지 않고, 안 보자니 내 무관심이 아이를 망칠까 두렵고. 개인적으로 초등학교의 학교 성적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적보다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 남겨주시는 코멘트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성적에 눈이 가는 것을 보면 나는 세상 모순적인 사람인가 보다. 


'노력요함'만 없어라. 성적이 표시된 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심호흡을 했다. 하나, 둘, 셋. 천천히 손을 뗐다. '휴~ 다행이다. 노력요함은 없다. 됐다!'


분명 그 마음이었다. '초등 공부는 기초를 쌓는 과정일 뿐이다. 공부에 질리게 하지 말자. 아주 심각한 정도만 아니면 되지.' 그래서 정한 기준이 '노력요함'이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웬만해선 '노력요함'을 받지 않는다고 하기에 '노력요함'만 없으면 아주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나를 잘 몰랐던 모양이다. 아이의 성적 앞에서 이중적인 내 모습을 얼마나 많이 발견하게 되는지. '매우 잘함' 몇 개, '잘함' 몇 개. 또 '보통' 몇 개.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는데도 마음이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 요동쳤다.


특히 아이가 가장 자신 있어하던 한국사. 사회의 두 영역에서 하나가 '잘함'인 것을 보고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이를 소환했다.


"1호야. 한 학기 또 열심히 잘했네~. 수고했어. 그런데 사회 이거 왜 그냥 잘함이야?"


"그거? 나도 몰라."


"그리고 이거 과학 좀 봐봐~. 이건 보통이네?"


"어~. 그건 좀 어려웠어."


"그래? 그럼 미리미리 좀 더 챙겨볼 걸 그랬다~."


'그러니까 잘한다고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했어야지. 보고 보고 또 봤어야지. 만날 다 안다고 하더니만, 쯧쯧.' 하마터면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뻔했다.


"그렇구나. 알겠어~. 내년엔 조금 더 노력해 보자!"


내가 초등 성적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엄마인 줄 알았다. '잘함'이든 '매우 잘함'이든 '보통'이든 '노력요함'만 없으면 된다고 믿는 엄마인 줄 알았다. 아이의 성적표를 앞에 두고 내 민낯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봐~'



Image by Mohamed Hassan from Pixabay


문득 엄마로서의 내 성적이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하나 이상은 '노력요함'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물어봤던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선 굉장히 뜬금없겠지만 알고 싶었다.


두 아이 모두 후한 점수를 줬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잘함'은 내가 생각하는 '노력요함' 수준일지 모른다. 그건 많이 반성하고 개선하라고 알려주는 지표였다. 아이의 성적보다  내 성적을 먼저 관리해야겠구나,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노력요함'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얘기하자면, '잘함'이나 '매우 잘함'이면 더 좋겠다. 아이들에게 바라기 전에 나부터 그렇게 되기로 했다. 아이들이 내게 '매우 잘함'이 아니라 '잘함'을 준 것은 화와 짜증 때문이라고 했다. 좀 더 너그럽고 수용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면 전 영역에서 매우 잘하는 우등엄마가 될 수 있겠지!! 오늘부터 매일 명상이라도 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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