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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Feb 22. 2024

자율배식의 득과 실

얼른 개학해서 급식 먹자

어떻게 하면 골고루 잘 먹일 수 있을까. 13살, 10살 아이들하고도 늘 먹는 걸로 다툰다.





두 아이의 밥을 식판에 주고 있다. 둘째 아이가 다른 사람이랑 젓가락 섞어가며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설거지가 간편하고 차리는 데 품이 덜 드는 게 이유다. 물론 반찬을 골고루 줄 수 있다는 것도 식판식의 장점이다. 상황에 따라 한 그릇에 볶음밥이나 솥밥, 리조또 등을 해줄 때도 있지만 기본은 식판식이다.


식판에는 밥과 국, 김치를 비롯해 한 두 가지 반찬이 담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나 햄, 생선류를 돌아가며 하나씩 준비하고, 가능하면 나물 반찬도 하나씩은 포함한다. 매 끼니 영양을 잘 맞추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골고루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꼭 먹었으면 좋겠는 메뉴들도 종종 내준다.



이렇게 몇 년째 식판식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서야 하나의 큰 단점을 발견했다. 버려지는 음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은 리필까지 하면서 먹지만 그렇지 않은 음식은 한 입 맛 겨우 보는 정도이니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다. 남긴 반찬 먹어치우기는 엄마의 주된 업무 중 하나였는데 버려지는 양이 줄어드는 대신 내 체중이 오르는 당연한 결과 앞에서 버리지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버려지는 건 아깝지만 그렇다고 내 몸을 망치지는 말아야 하니까.


"골고루 먹자~!"

"먹고 있어요~"


대답은 잘들 하지만 다 먹었다는 상태를 보면 나물이나 좋아하지 않는 반찬 칸은 비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건 안 먹어?"

"배불러~"

"너 좋아하는 것만 홀랑 다 먹고 이러기야~?"

"배 부른데 어떡해!"

"그럼 한 젓가락만 딱 먹자~"

"싫어~ 배불러~"

"한 젓가락만!! 이거 먹어야 튼튼해지지~~!!"

"엄마가 많이 줘서 그렇잖아~~!!!"


그래? 내가 많이 줘서 못 먹는다는 거지? 어떻게 하면 반찬들을 골고루 책임감 있게 먹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게 자율배식이다. 몇 년 전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해본 경험이 있어서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 자율배식의 목적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책임감 있게 먹는 것. 아이가 먹고 싶다는 반찬 하나를 포함해서 식단을 준비한 후에 아이가 자신이 먹을 만큼 스스로 그릇에 담아 다 먹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와 아이들이 서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원하는 반찬은 꼭 하나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반찬을 미리 물어본 후 번갈아 가면서 해당 반찬을 포함시키고, 가능하다면 아이가 식재료를 직접 손질하거나 조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이들이 원하는 반찬은 대부분 고기였는데, 굽거나 볶거나 찌는 등 가능하면 조리방법도 다르게 해 본다.


먹을 만큼 가져가되 반드시 모든 반찬을 포함해야 한다

밥부터 국, 반찬까지 모두 스스로 원하는 만큼 가져간다. 하지만 자율배식의 목적이 '골고루! 책임감 있게!'인 만큼 좋아하지 않는 반찬도 반드시 먹어야 한다.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스스로 정한 양은 남기지 않고 다 먹도록 책임감을 부여한다. "엄마가 많이 줬잖아~!"라는 핑계 원천봉쇄!




자율배식은 반찬도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하고, 그릇과 집게 등도 여러 개 있어야 한다. 자연스레 준비 시간이나 치우는 시간이 길어진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골고루 책임감 있게 먹을 수 있다면 하루 한 끼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시작은 좋았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밥과 국, 반찬들을 식판에 담았다. 좋아하지 않는 반찬도 조금씩 담아 먹는 모습에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번거로움은 금세 잊혔다.


그렇게 두어 번 자율배식을 해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원래도 잘 먹는 큰 아이가 너무 먹는 것이다. 이미 덩치가 식단 관리를 해야 하는 상태인데 자율을 무기로 평소보다 더 먹으니 그냥 둘 수도 없고, 제한을 할 수도 없고.


더 잘 먹이고 싶어서 호기롭게 시작한 자율배식은 그렇게 허무한 엔딩을 맞았다. 대신 1회는 자율배식을 하기로 합의했다. 단, 그 외의 날들은 최대한 골고루 먹도록 좀 더 노력하기! 


아이들이 좀 크면 먹이는 문제로는 고민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골고루 잘 먹이고 싶은 건 엄마만의 욕심인가.



율배식을 하면서 얻은 건 그때라도 아이들에게 자유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 먹기 싫은 것도 책임을 갖고 먹는다는 것. 버리는 음식량도 줄일 수 있고. 반면 잘 먹는 아이만 더 잘 먹게 되는 부작용이...(ㅠㅠ)



자율배식으로 기대했던 효과를 완벽하게 거두진 못했지만, 당장 내일은 또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여야 할까 고민이지만, 다행인 건 곧 개학이라는 것!!!  에라 모르겠다~. 개학하면 점심 한 끼라도 영양 맞춰 잘 먹을 테니까 그때까지만 좀 더 고생하자!!!


내일은 귀찮으니까 계란밥, 콩나물밥, 미역국밥으로 세끼 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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