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있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다. 외롭지 않지만 외롭다. 잘 모르겠다. 이게 대체 어떤 마음인지.
아이들과 남편이 '아빠 어디 가'를 하는 주말이었다. 남편이 (남자)지인들과 자녀만 데리고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1박 2일 캠핑을 떠났다.
앗싸. 나 자유부인이다~~!!!
쾌재를 불렀다. 혼자 사진전에 갔다가 그림전에도 갔다가 예쁜 커피숍에 가서 커피도 마셔야지. 평소 발길 가는 대로 다니는 MBTI P인데 J를 한 스푼 넣어서 계획을 세웠다. 사실, 전주나 경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주머니 사정상 그건 접기로 하고 멀지 않은 곳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오기로 했다.
아빠 어디 가 출발하는 날. 새벽같이 남편과 아이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내 안에 있던 중요한 무언가가 툭 빠져 버린 느낌. 몸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생긴 듯한 허전함. 집안이 아무도 없는 눈밭처럼 적막했다. 이거, 외로움인가.그럴 리가 없잖아. 한참을 생각하다 인정하기로 했다.
Image by Rosy / Bad Homburg / Germany from Pixabay
외로운 게 맞는 것 같아.나 외롭네~?
감정을 알아차리고 나니 갑자기 집채만 한 쓰나미가 코앞까지 온 듯했다. 소름 돋게 외로웠다. 뜬금없이 눈이 뜨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활자로 표현하기 힘든 막막함이 낯설었다.
뼈까지 시린 적막을 깨야 했다. 텔레비전을 켜 채널을 돌렸다. 왜 재밌는 건 하나도 없는 거니.
남은 음식 냉동해 둔 것을 대충 데워 먹고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있다간 외로움에 잡아 먹힐 것만 같았다. 계획대로 움직여야지, 내 자유를 이렇게 멍청하게만 보내면 안 되지.
집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나가니 마음이 환기되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 솔솔 부는 바람, 틈틈이 따뜻한 햇살.
예매해 둔 사진전에 갔다.
- 엄마. 뭐하고 있어요?
아이의 메시지가 이렇게 반가운 일이었나. 사진전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다.
- 엄마가 얘기한 사진전에 왔지~.
-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 당연하지~. 엄마 혼자서도 잘 노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
아이의 메시지와 전화에 다운됐던 기분이 급상승했다. 텅 빈 마음이 조금씩 채워졌다. 사진전에 혼자인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그림전에도 갔다가 어릴 때 좋아하던 길거리 떡볶이를 먹고 커피도 마셨다. 내내 생각했다. 애들도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물론 같이였다면 '혼자 오고 싶다' 했겠지만.
문득 부모님들의 마음이 떠올랐다. 자식들의 연락에 세상 다 얻은 듯 반가워 하는 게 이런 마음인가. 자식들이 왔다 간 이후의 텅 빈 허전함 때문에 그렇게 집착을 하게 되는 걸까.
혼자인 것에 외로움 같은 건 느끼지 않던 나다. 오히려 즐겼다. 혼자 식당에서 밥도 잘 먹는다. 셀카도 잘 찍는다. 그런데 왜지? 내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마음에 털실 같은 균열이라도 생긴 모양이다.
뭐가 됐든 이렇게 두어서는 안 된다. 벌어진 틈을 메워 혼자서도 튼튼한 벽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을 잘 독립시키는 거니까. 자식에게 집착하는 엄마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할 수 있는 건 내가 나를 더 단단히 다듬는 것밖에 없다.
Image by Alexandra_Koch from Pixabay
계획했던 것들을 다 하고 못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들도 몰아봤다. 팝콘 튀겨 넷플릭스 영화도 보고. 혼자서도 잘 놀다가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오면 꼭 안아줘야지. 보고 싶었다 말해줘야지. 그렇게 또 그 삶에 충실해야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나를 충전하는 거야, 마음을 붙들었다.
여기서 반전!! 막상 돌아오고 나서 치울 게 산더미처럼 쌓이고 집안이 소란해지니 또 혼자 있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딱지 뒤집히듯 갑자기 바뀔 수 있는 건지 참 알 수가 없다^^;
어찌됐든. 이번 1박 2일은 이상하게 외로움으로 시작했지만 확실한 건 가만히 있으면 그 감정이 배가 된다는 것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 무작정 걷거나 차를 마시러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음 아빠 어디 가 하는 날엔 제대로 여행 한 번 떠나보려 한다. 외로움 같은 건 얼씬도 못하도록 신나고 재밌는 계획을 세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