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길을 지우지 못한다

앞이 보이지 않아 멈추고 싶을 때

by 이니슨

커튼을 젖히자 온통 하얗고 뿌다. 안개가 삼켜버린 세상엔 '앞'이라는 방향이 사라진 듯했다.

"하나도 안 보이는데, 갈 수 있을까."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로에 올라타서도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었다.

@AI 생성 이미지


비상등의 주황색 깜빡임에 의지해 흐릿한 앞차의 잔상을 쫓았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살피느라 비좁아진 시야만큼이나 어깨가 팽팽하게 굳어갔다. 길이 아닌 짙은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느리더라도 바퀴는 굴러가야만 했다.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걸렸을까. 안개를 헤치고 무사히 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안개는 풍경을 지웠을 뿐, 길을 지우지는 못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내 삶도 안갯속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자꾸만 길을 잃고 멈춰 서게 될 것 같은 불안함. 끝도 없는 막막함에 사로잡혀 발만 동동 구르던 약함.

그날의 운전은 나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짙은 안개는 시야를 가릴 뿐, 길을 지우지는 못한다는 것.


@AI 생성 이미지


나는 여전히 안갯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개가 걷히기만을 기다리며 서 있지 않기로 했다. 보이지 않더라도 그 길을 믿고 한 발씩 내디딜 때 안개는 조금씩 뒤로 물러날 것이다.

길은 사라진 적이 없다. 그러니 내가 그 길을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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