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이 아닌 대혹의 나이
공자는 말했다.
마흔은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 불혹(不惑)이라고.
스무 살 어린 날에 멀리 마흔을 바라보며 그리 살게 될 줄 알았다. 세상 일 따위 불구경하듯 멀찍이 서서 안정된 수입과 탄탄한 자산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 게 될 거라고. 우아한 말투와 백조의 날갯짓 같은 고급스러운 자태로, 아름다운 날들을 영위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막상 마흔이 되고 보니, 어린 날의 생각은 그야말로 '개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사십여 년 살면서 이렇게까지 세상일에 나풀나풀 흔들리 적은 없다. 불혹이 아니라 '유혹 앞에서 크게 흔들리는, 대혹(大惑)'이다.
지출은 느는데 수입은 적고, 단춧구멍만큼 있던 자산마저 모래성처럼 사그라졌다. 물질적인 피폐함은 종종 정신까지 무너뜨려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우악스럽고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됐다.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까르르 웃던 어린 나는 이제 굴러가는 나뭇잎을 보며 한숨짓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누구는 갖고 있던 주식이 올랐다 하고,
누구는 금테크에 성공했다 하고,
또 누구는 서울에 집을 샀다고 한다.
누구는 아이가 전교 1등이라 하고,
누구는 남편이 승진을 했다 하고,
또 누구는 워킹맘으로 성공했다고 한다.
타인의 희소식에 참을 수 없이 흔들린다.
하릴없이 보던 TV 화면 속에 고층 빌딩의 설계에 대한 내용을 보았다. 고층 빌딩은 일부러 약간의 흔들림을 허용해 구조적 안전을 확보한다는 이야기였다. 흔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건물에 균열이 생긴다고 했다. 실례로 63 빌딩은 강풍 시 최상층이 약 40cm 좌우로 움직인단다.
그렇다면 내가 흔들리는 것도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어책일지 모른다.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맞춰 흔들려줘야 단단히 버틸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한 번씩은 인생의 태풍을 마주한다. 꺾이지 않으려면, 흔들리는 게 마땅하다. 잠시 흔들리다 보면 곧 바람은 멈추고 봄날의 햇살이 비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