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비로소 엄마의 발바닥을 읽다

by 이니슨

뒤꿈치가 갈라졌다.

각질이 지층처럼 쌓여 딱딱해진 뒤꿈치에 균열이 생기더니, 급기야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피딱지를 닦아내고 밴드를 붙이려는데 엄마가 생각났다. 나처럼 마흔 무렵이었던 엄마의 발이.


AI 생성형 이미지



"엄마 발이 왜 이래?"
엄마 곁에서 뒹굴거리다가 엄마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맨발로 많이 다녀서 그래~"
밀린 빨래를 개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엄마의 눈가엔 숨길 수 없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시절 엄마는 가끔 내 반들반들한 발을 쓰다듬으며 '참 예쁘다' 했었다. 발이 뭐가 예쁘다는 걸까? 이해할 수 없던 엄마의 말이 마흔의 어떤 날에 가슴에 맺혔다. 엄마의 지친 표정과 함께.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엄마 뒤꿈치의 각질은 나를 키운 세월이었다. 나를 키우며 스스로를 돌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엄마의 시간들이 거기에 쌓이고 쌓여 있는 것이었다.




가뭄이 든 논바닥 같은 뒤꿈치를 각질제거기로 밀어내고, 스크럽제를 듬뿍 발랐다. 켜켜이 쌓여 딱딱해진 세월을 다 떨궈내는 건 역부족이었지만 적어도 세상이 무너질 듯 갈라진 틈만은 없애고 싶었다.

얼마 전 엄마를 만났는데 자연스레 발에 시선이 머물렀다. 내 기억 속의 발과 달리 각질 따위 없이 반질반질했다.

"엄마. 옛날엔 발 엄청 갈라지더니 이젠 괜찮네?"
"예전엔 바쁘고 힘들어서 뭘 할 수가 없었잖아. 이젠 남는 게 시간이니 관리 좀 하는 거지~"




AI 생성형 이미지


내 무릎에 슬쩍 드러누운 딸아이의 발을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나처럼 현실을 살아내느라
'나'라는 존재를 가장 먼저 포기하는 어른이 되지는 않기를. 부디 제 자신을 가장 먼저 아끼는 삶을 살아가기를.


토요일 연재
이전 09화제사가 끝난 뒤에 알게 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