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은 차인데도, 꼴찌라니
나는 왜 금수저가 아닐까?
왜 옆 집 누구보다, 학교 동기 아무개보다 가진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을까.
내 환경을 놓고 괴롭던 시간들이 있었다. 타인의 조건을 나와 저울질하며 끊임없이 내 조건을 원망했다.
모바일 게임 <카트라이더>는 그런 내게 환경보다 중요한 건 의지와 노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휴일이면 아이들과 함께 카트라이더 게임을 한다.
십수 년 강산이 변하는 사이 카트라이더도 진화를 거듭했다. 캐릭터와 아이템만 늘어난 게 아니라 게임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한동안은 도둑 잡기를 즐겨했고, 요즘은 RP 모드를 랜덤 플레이로 한다.
RP 모드는 게임의 종류와 차량이 랜덤으로 주어지고, 차량에 ‘운이 좋다’ 혹은 ‘운이 나쁘다’는 코멘트가 따라붙는다.
"이건 순전히 내 차가 운이 나쁘기 때문이야!!"
겨우 게임일 뿐인데 묘하게 승부욕이 생겼다. 하지만 결과는 꼴찌, 꼴찌, 또 꼴찌. 결국 나는 ‘운이 나쁘다’는 차 탓을 했다.
“엄마~ 다음엔 엄마도 좋은 차 나올 거야~”
아이들의 응원 덕분인지 이번 판에선 내 카트 위에 ‘운이 좋네요’라는 멘트가 반짝였다.
두고 봐. 이번엔 내가 이길 거야!!
이를 악물고 달렸지만 결과는 여전히 꼴찌. 그것도 완주를 하기도 전에 승부가 났다. 심지어 ‘운이 나쁜 차’를 받은 큰아이가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왜!!
나 운이 좋은 차였다고~!!!
그제야 알았다.
랜덤으로 주어진 조건은 방향을 조금 바꿀 뿐,
결승선을 통과하는 건 결국 플레이어의 몫이라는 걸.
우리 삶도 그렇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결승선이 정해지는 건 아니다.
금수저냐 흑수저냐는 나의 선택지가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달릴지는, 아직 내 손에 남아 있다.
'가능성을 만드는 것도, 그 가능성을 키우는 것도 결국은 노력'이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늘 아이들에게 노력을 강조한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정작 나는 그렇지 못했던 순간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고 싶은 것도 많았으면서 마음만 앞섰다.
게임을 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운이 좋은 차’가 나왔다는 사실에만 기대고, 잘하기 위한 연습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꼴찌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건 차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내 탓이었다.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환경이나 조건부터 따질 게 아니라 일단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결승선으로 달려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노력을 해야 할까.
내 10년 후의 목표는 유럽 한 달 살기다. 체력이 필요하고, 외국어도 배워야 하고, 돈도 벌고 모아야 한다.
지금 형편으로 보면 까마득한 이야기다. 그래도 한 계단씩 올라가 보려 한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봤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지.
이번엔, 조용히 나부터 돕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