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해진 역할을 내려놓는 법
또 한 번의 제사가 지나갔습니다. 명절을 제외한 네 번의 기제사 중 올해의 첫제사였지요.
어떤 일은 늘 정해진 사람이 합니다. 고생은 늘 같은 사람이 하고, 생색은 늘 다른 사람이 내는 것처럼요.
제사 때마다 심통이 났어요. 음식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모두가 며느리들에게만 맡겨지는 데 불만이 쌓였죠.
제사만 지내고 나면 심신이 지치는 건 당연했지만
그런 마음을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수고는 여전히 ‘당연한 역할’로 구분될 뿐이었죠. 공이 없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고요.
신혼 때 남편은 제사 지낼 때마다 작은 선물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세월 속에 흐려진 지 오래입니다. 어떤 해엔 제사 이후에 몸살이 났는데 남편은 관심도 없더라고요. 그게 참 서운하고 서러웠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누군가 알아서 나를 배려해 주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계속 나 자신을 소모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일은 누군가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실속을 좀 차리며 해야겠어요. 나만 며느리인 줄 알았는데, 어머님 역시 평생 누군가의 며느리로 제사를 치러오셨다는 것도 그제야 보이더군요.
제사에 남자들도 적극 참여시키기로 했어요.
"1호야. 이리 와서 설거지 좀~~!"
"엄마가 부쳐놓은 전도 예쁘게 정리해서 담아줘~"
"엄마는 제사에 여자들만 일하는 거 반대야. 남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준비해야 하지 않겠니? 나는 너를 생색만 내는 남자로 키우진 않을 거야."
15살 아들을 불러 일을 시켰습니다.
제사 후엔 남편에게 설거지를 부탁했어요.
"어머님~ 이번에도 엄청 고생이 많으셨어요~~"
공 없는 일을 수십 년 해오신 어머님의 정성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선 남편을 향해 엎드려 절 받는 식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듣는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사 준비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그게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님을 모를 거예요. 언젠가는 먼저 얘기해 주는 날이 오겠죠?
곧 명절이고, 얼마 안 가 두 번째 기제사가 있습니다.
조상덕 보는 사람은 명절에 해외여행 간다고들 하죠? 제가 지금 조상덕을 보는 것인지, 앞으로 보게 될 것인지 증명할 길은 없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제가 스스로 유연해질 수밖에 없지요.
당신은 지금
‘참고 있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당연해진 역할’을 떠안고 있는 사람인가요?
그 역할을 내려놓는 방법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이 먼저 알아차리는 일부터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