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술을 마셨고, 필름이 끊겼다

by 이니슨

2주 전이었던가, 3주 전이었던가. 오랜만에 지인 가족을 만나 술을 마셨다. 남편의 학교 선배 가족이었는데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과 캠핑이나 여행 등을 자주 다니곤 했다. 거의 1년 만에 그들을 만났던 그 날, 필름이 끊겼다. 그리고 나를 꽁꽁 억압하던 어떤 것도 같이 끊어졌다.





나는 '술부심'이 있다. 웬만한 여자나 남자보다 술을 잘 마신다고 자신한다. 내가 남편보다 유일하게 잘하는 것도 술이다.


내가 처음부터 술을 잘 마셨던 건 아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쉽게 취해버리곤 했다. 졸업 후 (지금은 없어졌지만)작은 주간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한 후로 업무의 특성상 술 마실 일이 잦았다. 업무적인 술자리였기에 흐트러지지 않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덕분에 나는 버티는 방법을 배웠고, 웬만한 사람들과의 술 대결에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평소와 달리 나는 만취 상태가 됐고 필름이 부분 부분 끊기고 말았다.


술을 마시고 뻗은 것은 10여 년 만이었다. 5년 연애, 결혼 10년 차인 남편도 내가 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날이 처음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날 나는 맥주 2캔, 와인 1병, 소주 1병 정도를 마셨던 것 같다. 많이 마신 건 아니었다. 너무 섞어 마신 탓인가.


소위 말하는 '꽐라'가 되면 큰 대(大) 자로 뻗어서 잔다는 것을 그 날 몸소 체험했다. 남편은 밤에 지방 상갓집에 갔어야 했는데 아이들을 다 씻기고 재운 후에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살짝 짜증이 난 듯한 남편에게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내가 매번 이러냐!


남편은 짜증이 나서 상대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내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더 이상의 군소리가 없었다. 나 역시 먼 길 다녀와야 하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내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남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해 본 적도 거의 없다. 괜한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가부장 중심의 가정에서 자랐다. 어릴 때 누나들과 겸상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게다가 성격이 강하다. 남편이 나를 많이 이해해준다는 것을 알지만 자라온 환경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 역시 결혼 전부터 무조건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아내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왔기에 웬만해서는 남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서로 감정을 부딪혀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고 많이 인내도 했다. 화가 나고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입 밖으로 잘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삭혔다. 남편 역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그랬던 내가 남편한테 반항(?)을 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술 마시고 뻗을 일도 없었겠지만, 그 정도로 술을 마셨더라도 어떻게든 내가 아이들을 챙기면서 남편의 눈치를 봤을 것이다.




이렇게 만취 상태로 필름이 끊기고 나면 보통은 다음 날 숙취로 컨디션이 좋지 않고, 필름이 끊긴 사이 무슨 짓을 했을까 머리를 감싸며 후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몹시도 개운했다. 무겁고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약간 신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필름이 끊기면서 나를 억압했던 어떤 것들도 일부 끊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술 마시고 취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내 감정이나 생각을 쉽게 드러내선 안 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돼...


나는 줄곧 나를 억압해 왔다. 그 억압이 자의에 의한 것이든 내가 속해 있는 환경이나 타인에 의한 것이든.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조금은 끊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만났고, 오랜만에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술을 마셨고, 오랜만에 사람들에게 내 힘든 얘기를 했다. 또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도 좀 흘렸고, 오랜만에 한참을 떠들며 웃기도 했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나는 몇 달간 극심한 우울함을 겪고 있었다. 너무도 힘들었고, 또 외로웠다. 우울함이 끝없이 이어졌다.


내 우울함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코로나19로 매일 두 아이를 홀로 돌보는 고단함?

사람들과의 만남 없이 집에만 있는 답답함?

원래도 바빴는데 더 바빠진 남편의 부재?

아무것도 아니라는 내 존재감?

그런데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무 곳도 없다는 외로움?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나는 쉽게 울적해졌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울적함은 더욱 깊은 곳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한 나약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런 시간들이 몇 달째 이어지던 어느 날, 손목을 긋기로 했다. 그 전에도 여러 번 생각은 했었지만 실행에 옮겨 본 것은 처음이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충동적인 마음이 들었다. 칼 끝이 손목에 닿았다. 차가웠고 날카로웠다. 칼끝에 살짝 힘을 줬다. 칼 끝이 눌리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그 아픔 때문이었을까. 차마 그을 수 없었다. 손목에서 칼을 뗐다. 상처가 조금 남았다. 아주 약간의 피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곧장 따가움이 느껴졌다.


아파ㅠㅠ


혼잣말을 하며 한참을 울었다. 손목에 상처와 자국이 남았다. 그걸 보면서 또 한참을 혼자 울었다. 언제나 그랬듯 내 울음소리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싱크대 물을 더 세게 틀었다. 혹시라도 바로 뒤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들킬까 숨 죽여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전쟁터에 나갔다 온 장수에게 상처는 영광이지만 내 손목에 남은 상처는 내 나약함을 깨닫게 해주는 부끄러운 흔적일 뿐이었다. 그 흔적은 서서히 연해지더니 내가 만취상태가 됐던 그 날 이후로 완전히 사라졌다. 내 억압의 일부가 사라진 것처럼.



참 묘하게도, 술 마시고 뻗은 그 날 이후로 내겐 조금의 용기가 생겼다. 나를 표현할 용기, 내 생각을 이야기 할 용기, 좋고 싫음을 표현할 용기, 감정을 내보일 용기, 내가 정해 놓은 억압에서 벗어날 용기.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낼 용기. 손목을 그을 용기 조차 없던 내게 긍정의 용기가 생긴 것이다.


손목에 칼 끝을 댔을 때의 느낌을 상기하며 내 우울함의 이유와 그 해결 방법을 찾아내자고 다짐한다. 그 다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울함의 패턴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진 것도 같다.


최근에 그 지인 가족을 다시 만났다. 언니(남편 학교 선배의 아내)가 내게 말했다.


"너 그 사이 뭔가 많이 변한 느낌이다?"


언니. 원래 이게 나야.
한 번 뻗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여~.
나 이제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거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