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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야 아는 것들 — 미완성의 시간 위에서

같은 기억, 다른 해석

by 네덜란딩 민수현

내가 2년 전에 떠올렸던 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떠올리는 그 시기의 나는 묘하게 다르다.

같은 과거인데, 감정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다.

당시의 장면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는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단지 과거에서 미래로 직진하는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시점은, 과거라는 풍경을 언제든 다시 조명할 수 있는 위치다. 그리고 이 조명은 늘 다른 각도에서 비춰진다.


현대 물리학에서도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관측자의 위치와 속도에 따라 시간은 달라진다’고 말했듯,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시점 역시 언제나 달라질 수 있다.


기억은 정적인 기록이 아니라, 지각의 재구성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보이는 것들은, 단지 감정의 숙성이 아니라 관찰자의 변화, 인식의 틀 자체가 달라진 결과다.


흄(David Hume)은 “인간은 자신의 기억을 통해 자신을 구성한다”고 했고, 베르그송(Henri Bergson) ‘지속‘ 이라는 개념을 통해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의식 속에서 경험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거는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 시절의 감정과 선택은, 지금의 내 의식 속에서 계속해서 ‘다시 살아난다’.


결국 내가 살아온 시간은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되고 재해석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내리는 어떤 해석도, 판단도, 완결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인 초안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의 시간 위에 서 있다.

지금의 나도, 나의 과거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조차도

언젠가 다시 쓰일 문장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완벽히’ 살기보다,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오늘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 시간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 어떤 의미는 다시 떠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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