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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May 07. 2024

한국통사- 구원병 요청의 전말

갑오년 일은 지나 버렸으므로 우리 국민이 당국의 잘못된 조치를 추궁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지만, 정부에서 청병을 요청한 말은 아직도 아픈 말이라 할 수 있다. 무릇 갑오동학란은 그 허물이 정부에 있고 백성들에게는 없다는 것은 천하가 모두 아는 바이고 숨길 수도 없다. 그런데 정부가 중국에 원병을 요청하면서 자국 백성을 ' 백성들의 습성이 흉한(흉악하고 사나움)하고 성질이 휼간(속이고 간사함)하다'고 한 것이 도대체 할 수 있는 말인가. 무릇 우리 백성은 윤상을 돈독히 지키며, 질서에 순응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복종하고 전한 사람이 귀한 사람에 굴복하는 것을 하늘의 도리로 알고 있었다. (중략) 우리 국민이 죄가 있다면 나약했던 것인데, 이를 모질고 사납다고 한 것은 옳지 못하다.       

아닌 게 아니라 호남지방은 땅이 비옥하여 산물이 많아 백성들은 스스로 하늘에서 내린 산물만 가지고도 휴양(편히 쉼)하기에 편안하여 괴로움을 참아가며 모험하는 습성이 없었다. 그런데 윗사람을 섬기는 것을 잘하여 평소 유약하고 기대기를 잘한다고 희롱을 들어왔는데, 정부는 오히려 천부(산물이 많이 나는 토지)로 보고, 권세가는 부엌으로 여겨 수탈하였다.      

이제 다른 나라에 대하여 명백하게 ' 백성의 습성이 흉한하고, 성질이 휼간하다'고 하였으니, 비록 그런 말이 난이 일으킨 허물을 면하고 이를 백성에게 돌리기 위해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말은 너무나도 잘못된 것이었다. 대저 탐학과 불법이 누적되어 오늘의 반란을 양성한 것이 누구인가. '흉한 휼간' 네 글자는 정부가 지어낸 것으로, 이런 말로 백성에게 억지로 뒤집어씌운 것은 옳지 못하다.      

(중략) 아! 수십 년 전부터 내려오면서 궁중은 탕장(국가 창고)을 써서 산천과 신불(神佛)에 망령되이 제사나 지낸 것은, 귀신의 비호를 빌고 안락을 향유하기를 추구한 것이었다. 심복의 신하들은 잘못된 점을 고치라고 말 한 마디 못하면서 도리어 무당과 점쟁이들을 끌어들여 성원하였다.     

(중략) 모두 조정의 용감한 장수요 권세가 심복인데, 왜 이 무리들에게 힘을 내어 소탕하라고 명하지 않고, 외국인에 원병을 보내 달라고 구걸하였던가. 저들은 대체로 악을 쌓아온 지 오래되어 항상 떨고 있었고, 백성의 토벌을 두려워하였는데, 동학도들이 왕의 측근을 제거하겠다고 선언하자 마음이 해 전해지고 간담이 겁에 질려 빠져나갈 곳이 없다고 판단하여 다급함을 알리는 더 급급하였다.     

(중략) 나(박은식)는 한성에 있다가 원병을 청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당로자(當路者)에게 "동학무리는 오합지중이라 관군들이 힘써 소탕한다면 어찌 진정시키지 못하랴만, 어찌 이를 근심하여 중국에 원병을 청하기에 이르렀단 말인가. 우리나라에 구구한 내란이 있어 스스로 소탕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위급함을 구해 달라 애걸하는 것은 나라의 큰 수치가 아닌가. 또한 갑신년(1884) 톈진조약에 명시된 바와 같이 만약 청국에서 파병하면 일본도 어찌 무슨 말이 없으랴. 이 일로 양국 군대를 불러들이게 된다면, 우리나라가 무사히 보존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당로자는 이에 대해 답도 하지 못했다. 슬프다! 부유(늙은 선비로 박은식을 뜻함)의 말이 불행하게도 적중되고 말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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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민영준(민영휘로 개명한 반민족행위자)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한국인은 흉악하고 사나우며 간사하다고 말을 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배경과 원인이 관리들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박은식 선생은 충청과 전라 지역은 풍요로운 지역으로 불평불만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유약하고 기대기를 잘한다고 놀림받을 정도라고요. 그런 사람들이 봉기한 것은 고위 관리들이 백성의 재물을 자신의 부엌으로 여기며 마음대로 수탈한 데 원인이 있다고 봤습니다. 또한 민비를 비롯한 민씨 척족은 순종을 왕으로 즉위시키기 위해 무당과 점쟁이에 많은 재물을 주며 제사를 올리는 과정에서 많은 국고를 탕진하고, 지방 관리는 마음놓고 백성을 수탈하는 것이 봉기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민씨 척족과 탐관오리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빼앗길까 두려워 청에 원병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것이 청과 일본의 군대를 끌어들여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하면서 말입니다. 겉으로 백성이 하늘이며, 민심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외치던 말과는 달리, 속으로는 국민을 무지몽매한 족속으로 여기는 행동으로 조선은 외세의 간섭을 받아 식민지의 길로 점점 더 빠지게됩니다. 


비단 역사에서 이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이는 당나라 군을 끌어들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처럼 여러차례 외세를 끌어들여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행위가 더는 용납될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자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다른 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여 국민을 해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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