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호 Jul 02. 2024

6·25 전쟁 북한군에 대한 인식

6·25전쟁에서 북한군이 저지른 만행은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쟁 중에 일어난 북한군의 만행이라고 하여 하나의 주체로만 인식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북한군의 만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조금 세분화하면 크게 세 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쟁을 일으켰던 북한군으로 당시 인민군이라고 불리는 주체입니다. 두 번째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가 인민군에 협조하던 주체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북한 지역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는 빨치산이라 알려진 잔존 인민군이 있습니다. 


첫 번째 남침했던 인민군에 대해서는 전쟁 당시 많은 사람이 큰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인민군들은 남한 시민들의 호감을 얻어야 하는 만큼 호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만큼 자신들의 행동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알리는 선전·선동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북한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노래와 무용에 소질이 있는 아이를 선발하여 공연시켰습니다. 

<나는 그때 5학년인데 학교에서 무용을 잘한다고 해서 ~ 어느 고을에 가서 무용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인민군 선전이여. 우리 엄마가 간이 녹았을 거여. 죽으면 어떡하나 하고>

<이북 노래. 그런 거 가르치는 놈이 있어. 안 나가면 또 동네 와서 막 지랄해>


물론 인민군은 공무원이나 종교인들은 처형하는 만행을 벌였습니다.

<우리는 교회 다닌다고 우리 아버지를 인민군이 잡아갔어. 인민재판을 열어 사형시킨다고>

<군인 가족 할머니 방석까지 뺏어가고 지랄하고 발로 차고 그 지랄했어. 그때는 군인 가족은 그냥 쏴 죽여>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6·25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제주 4·3항쟁 관련자, 여수·순천사건 관련자 등 정치사범 일부가 수감돼 있었다. 정부는 6월 28일부터 4일간 대전형무소 재소자를 포함해 보도연맹원, 민간인 등 1,400여 명을 산내 골령골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집단 학살했다. 같은 방식으로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총 7,000여 명을 학살했다. 북한군에 의한 석방과 부역을 우려한 탓이다

1950년 7월 19일, 북한군이 대전을 장악했다. 이때부터 9월 28일,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기 전까지 대전은 북한군 치하였다. 북한군은 공직자, 청년단 간부, 민간인 등을 대전형무소에 수감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졌다. 수세에 몰린 북한군은 9월 25일부터 3일간 대전형무소에 수감했던 1,557명을 학살했다. 인근 구덩이에 묻거나 대전형무소 우물에 매장했다.-2015 <월간토마토> 중에서>


젊은 사람들은 땅굴 파기 등 강제 노역과 병원에서 부상병 치료 등에 동원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네들 오면 엄마들 다 데려다가 땅굴 파라고, 맨날. 맨날 땅굴 파야 해. 뭐 하러 그렇게 땅굴을 파라고 했나 몰라>

<우리 집에 와서 치료하잖아. 팔이 없고, 다리가 한 짝 없어 치료하면 구더기가 막 기어요. 꼬챙이로 파면 뚝뚝뚝 떨어져.>


당연히 재물의 약탈도 빠지지 않고 이루어졌습니다. 

<한 집에 삼십 명씩 쳐들어와서 밥해 먹여야 하고, 그것들 얼마나 악랄했는지>

<우리 역시 먹을 것이 없는데 쌀을 가져가서 밥해달라고 해. 소 같은 것도, 송아지 쪼끄마한 것 다 잡아가지고>


두 번째 북한에서 내려온 인민군에 협조했던 주체(지방 빨갱이)는 가장 미움받는 주체였습니다. 마을을 점령한 인민군은 마을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에게 완장을 채우고 숙청 대상을 밀고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낮은 신분으로 천대받던 사람들이 완장을 차고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에 갖고 한 집안을 모두 죽이는 사적 복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밀고자이기도 했던 완장 찬 이들은 가족을 죽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첨에 온 사람들은 안 죽였어. 절대로. 우리가 막 겁을 먹으니까 다 달래요.>

<인민군들은 안 무서운데 지방 빨갱이들이 끌고 다니면서>

<머슴 살고 그랬던 사람들이 말하자면 구박을 받고 그렇게 산 거를 거기서 인제 푸는 건가 봐>

<무식한 사람들이 다 공산주의가 된 거여. 무식한 사람들이 왜 공산주의가 되냐, 머슴살이하고 품팔이하던 사람들이 공산주의한다구 빨간 완장을 차주고 그러면, 지가 무신 대장인지 알고 완장 하나 차고 동네 휩쓸고 다님서 동네 사람들 더 많이 죽였어>


세 번째는 북한으로 올라가지 못한 빨치산의 만행입니다. 이들은 초기의 인민군과는 달리 밤이면 민가로 내려와 인명을 살상하거나 재물을 훔쳐 갔습니다. 

<아예 옥천군 같은데, 영동군. 이런 데는 지리산 빨갱이들이 내려와서 밤에는 ‘인민공화국’ 깃발을 꽂아놓고 와서 젊은 여자들 전부 잡아가고, 쌀 이런 거 뺏아가지고 가고, 시골에서는 소 가지고 가서 잡아먹고.>


대전 지역에서 전쟁을 경험했던 분들의 증언을 토대로 글을 적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겪은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듣는 것이 가장 생동감이 있을 테니까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남한의 민간인 피해는 사망 373,599명, 실종 및 포로 387,744명, 부상 229.625명입니다. 희생당한 개인과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모두 이야기한다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전쟁이란 소수의 사람이 대의를 내세워 일으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말한 대의가 정말 옳은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 이익 등을 대의라는 명분안에 교묘하게 숨겨왔음을 역사는 여실히 보여주니까요. 

설사 전쟁을 일으킨 그들이 주장이 대의더라도,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본 피해와 희생은 누가 보상해주나요? 그 누구도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전쟁이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일이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