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개국한 조선은 백성들의 혼란과 동요를 막기 위해 고려의 제도와 문물을 한동안 유지하며 나라를 경영했어요. 그러나 고려와는 다른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조선은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정치기구를 완성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정무 기관으로 만들어진 것이 의정부에요. 의정부(議政府)라는 명칭에는 관리들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총괄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하지만, 의정부라고만 부르지는 않았어요. 낭묘·도당·묘당·정부·황각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분이라면 도당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도당이라는 말이 간혹 등장하니까요.
의정부는 1400년(정종 2) 고려의 최고 정무 기관이던 도평의사사가 가지고 있던 국정과 군권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게 돼요. 왜 분리했냐면 정치는 의정부가 담당하고, 군대를 통솔하는 일은 삼군부가 맡도록 하여 신하들의 힘을 약화하는 동시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정종 때 왕권 강화를 위해 의정부가 만들어졌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정종이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태조와 이방원의 갈등이 높아지는 가운데 어부지리로 국왕이 되었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국정운영에 무관심하고, 아무 실권이 없던 정종이 관제 개혁을 추진한 것이 아니었어요. 관제 개혁의 뒤에는 실세였던 이방원이 개국공신의 힘을 약화하기 위해 도평의사사를 해체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어요. 하지만, 아직은 신하들의 힘이 더 강해서 개편 12일 뒤 삼군부 소속의 관리들이 의정부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 과거 도평의사사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이방원은 국왕으로 즉위하자 본격적으로 왕권강화를 위해 의정부의 권한을 약화하는 개편을 추진해요. 즉위 14년이 되는 해에는 의정부의 업무를 육조(六曹)에 넘기는 등 조직 개편과 함께 권한을 약화하는 육조직계제를 시행합니다. 육조직계제란 의정부의 권한을 약화하기 위해 육조의 판서들이 모든 업무를 국왕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한 제도에요. 또한 육조를 책임지는 장관인 판서를 정2품으로 높여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어요. 그러자 의정부는 국가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업무를 보고받지 못하면서 힘을 잃고 국왕을 견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태종의 뒤를 이어 국왕으로 즉위한 세종은 생각이 달랐어요. 국왕과 재상들이 국가의 주요 문제를 같이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의정부서사제를 실시해요. 의정부서사제란 육조에서 담당하는 업무를 의정부에 보고하면, 의정부의 영의정·우의정·좌의정이 모여 현안을 검토한 뒤 국왕에게 보고 및 의견을 건의하는 제도에요. 이 제도는 국왕이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재상들의 도움으로 국정 현안을 결정해야 하는 부담과 업무강도가 줄어드는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왕권이 약화하는 문제점도 있어서 단종 때 의정부의 김종서와 황보인이 인사권을 결정하는 황표정사에 불만을 가진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이라는 정변을 일으킵니다. 이후 단종을 내쫓고 국왕으로 즉위한 세조는 다시 육조직계제로 환원하며 왕권을 강화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의정부제도가 확립됩니다.
의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이후 국왕에 따라 변화되어 가다가, 1510년(중종 5) 삼포왜란 때 만들어진 비변사가 상설화되면서 의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돼요. 어찌보면 조선 전기 이후 의정부는 왕의 자문 기구로 전락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의정부의 재상이 비변사에 참여하여 국정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을 담당했던 만큼, 의정부의 위상은 여전히 백성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