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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Oct 22. 2024

조선 최장수 영의정 황희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재상으로 널리 알려진 황희(1363~1452)는 89세에 죽기까지 고려에서 조선시대까지 7명의 국왕을 섬겼어요. 황희는 고려 우왕 2년 음서제로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관료가 되어 관직 생활을 하다가 27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부임했어요. 이를 통해 볼 때 황희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집안도 좋았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러니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입장에서도 황희가 얼마나 탐이 나겠어요? 여러 차례 황희에게 나라를 경영하는 일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한 끝에 조정으로 데려올 수 있었어요. 

황희의 국정운영 능력은 탁월해서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즉위한 태종도 황희를 옆에 두며 어려운 일을 많이 맡겼어요. 오죽하면 “내가 죽는 날 황희도 따라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남겼겠어요? 하지만 이 둘의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벌어졌어요.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하는 과정에서 황희가 강력하게 반대했거든요. 누구보다 믿던 황희가 폐위를 반대하자, 크게 화가 난 태종은 평민으로 강등시킨 후 남원으로 유배를 보내버렸어요. 그래도 태종이 다시 황희를 조정으로 부를 것이라 예상하는 많은 사람이 황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남원을 찾아갔어요. 이때마다 황희는 이들을 만나지 않고 돌려보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황희의 됨됨이를 다시 한번 확인한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 세종에게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이라고 말해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만큼 세종에게 꼭 필요한 관리가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죠. 


세종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마치 야구의 구원투수처럼 황희를 활용했어요. 예를 들어 강원도에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져 인심이 흉흉해지자, 황희를 강원도 관찰사로 보내요. 그 외에도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국정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황희의 능력을 높이 사서 1426년 우의정으로 발탁해요. 이를 시작으로 1431년 영의정부사에 오르며 18년 동안 세종을 도와 국정을 운영했어요. 그로 인해 세종은 4군 6을 개척하고집현전을 중심으로 여러 문물을 정비하고 진흥하는 데 매진할 수 있었어요. 세종 말년에도 궁중 안에 불당을 설치하는 것을 두고 반발하는 관리들과의 갈등을 황희가 잘 중재해 주면서 대체 불가한 신하로서 자리매김해요


세종의 남다른 황희 총애를 두고 여러 구설수도 있었어요. 실제로 황희는 자신 또는 가족이 관련된 일로 여러 번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세종이 용서해 주었거든요. 예를 들어 우의정으로 있던 1426년 사위 서달이 하급 관리인 아전을 때려죽인 일을 감추기 위해 담당 관리와 아전 가족에게 압력을 행사한 적이 있어요. 다행히 세종이 사건에 의심을 품고 재조사를 지시한 끝에 진실을 알려지면서, 서달은 100대의 장형을 받아요. 황희의 청탁을 받아 사건을 무마하는데 도와주었던 관리들도 연이어 파면되고요. 당연히 권력을 남용난 죄로 황희도 65세의 나이에 우의정에서 파면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런데 얼마 후 세종은 황희에게 복직하라는 명령을 내려요. 많은 신하들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1430년에도 국가 소유의 말 1천 마리를 죽인 태석균의 일에 황희가 개입한 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기도 해요. 그러나 이듬해 다시 영의정부사로 복귀하며 주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잘못을 되갚으라는 세종의 깊은 뜻을요. 이후 황희는 어머니 삼년상을 위해 관직을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세종의 명령으로 3개월 만에 복직해야 했어요. 건강이 나빠져 더는 영의정부사로 활동하지 못하겠다고 거듭 사직 의사를 밝혀도 세종은 허락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세종은 “경은 아직 90세도 안 되었으니, 약을 써서 치료하면 거뜬하게 일어날 수 있소.”라며 어의를 보내며 다시는 사직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았어요. 결국 황희는 87세가 되어서야 세종의 허락을 받고 74년간의 관직 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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