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딴따라 Mar 23. 2023

절박한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자주 틀리고 헤매며 가끔 엉망일 예정인 당신에게

설핏 눈을 뜨니 5시 4분. 원래대로라면 아침잠이 많은 나는 한창 숙면에 빠져있어야 할 시간이다. 깨어나려는 의식과 잠들려는 몸뚱이가 연거푸 부대꼈으니 실제로는 삼사십 분 전부터 깬 셈이다. 새벽의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7년 전 새벽 기도를 다니던 2년여를 제외하면 내겐 그저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불완전한 시간일 따름이다. 


비몽사몽 중에 어린 시절 살던 집이 떠오른다. 부뚜막이 딸린 방 한 칸의 영등포 셋방 한쪽 벽면에 나무 문이 있다. 문을 열자 몇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면 10살인 내가 바짝 허리를 숙여야 할 만큼 낮은 다락방이 나온다. 창고지만 걸레질로 반들반들한 장판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창밖을 보는 일은 꽤 재미있다. 숙제를 하다 이따금 쪽창문으로 보는 세상은 리어카를 끄는 구부정한 상인과 맥주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구름 연기, 왁자지껄한 동네 아이까지 다양하다. 해가 져 어두워지기 전까지 다락방은 내 나이 또래가 선망하는 비밀 아지트였다.


철 지난 옷과 이불, 여기저기서 얻은 언제 입을지 모르는 옷가지, 부서진 장난감, 낡은 냄비가 한 편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색색깔의 보자기는 말 그대로 보물 보따리다. 한때는 유용했다가 쓸모를 다해 버려졌지만 사람의 손길이 오래 닿아 정이 든 물건이 곱게 싸여 있다. 새색시 옷고름 풀듯 보자기 매듭을 풀 때마다 보물찾기처럼 설레이곤했다. 


꿈속의 다락방에선 늘 냄새가 난다. 오래 묵은 먼지에서 나는 군내와 초겨울 서리를 맞은 축축한 냉기가 섞여 텁텁하고 후줄근하다. 후각으로 밀고 들어온 냄새는 내 몸 구석구석까지 쓸쓸한 향을 채운다. 보자기를 풀던 꿈속의 어린 내가 다시 매듭을 묶는다. 벌써 여러 차례 보따리를 풀고 묶었다. 다락을 내려오니 갑자기 한겨울 풍경이다. 어째 떠오르는 기억마다 겨울이거나 인적 없는 골목이다. 그래서일까. 새벽에 꾸는 꿈은 스산하다. 따뜻함이 다정함이라면 시린 꿈은 뭐랄까 괴롭힘은 없는데 한없이 외로운 사람의 구멍 난 가슴 같다.  

    



새벽의 나는 약간의 병을 앓는다. 혼자 거나 혼자가 될 것 같은 불안이다. 떨쳐내고 싶지만 아직 완전히 깨지 않았다. 잠에서 깬 아기가 엄마의 부재에 울 듯 새벽마다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다정한 친구는 떠오르지 않고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은 낯설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분리불안을 앓을 수 있구나. 내 아이의 온기가 배어있는 방이 방주인이 떠난 후 뽀얀 먼지 냄새를 풍기는 상상을 한다. 

     

거실에서 달그락 소리가 난다. 천장과 창문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다. 눈을 감고 귀 기울여보지만 이내 조용하다. 필시 방문 밖에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있다. 내 집이니 내가 ‘갑’인데, 방문 밖의 '무엇'이 무서워 나는 자는 척을 했다. 잠시 후, 안 되겠다 싶어 핸드폰을 켠다. 환한 영상이 흐르고 나의 눈이 다급히 화면을 쫓는다. 금세 세상이라는 현실이 확 밀려오더니 더 이상 방문 밖 소리가 나지 않는다. 때마침 새벽이 물러나면서 창문사이로 설익은 햇빛이 들어온다. 살아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A : 절박하면 될까요?
B: 아뇨. 절박하다고 다 되진 않아요.
A: 그렇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B: 절박한 적이 없는 사람은 그 시간이 무엇을 주는지 몰라요. 내가 나로 채워지는 경지가 있어요. 성공이든 실패든 뭐 하나 버릴 게 없이 나를 꽈악 잡아주는 힘이죠. 절박하게 달려 본 사람은 좌절하지 않아요. 자신이 뭘 했는지 알거든요.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한 자신을 봐버렸거든요. 만약 좌절했다면 결과만을 탐했거나 욕망 때문일 거예요. 진짜 절박한 사람은 초능력을 경험해요. 목적을 뛰어넘은 단계죠. 고층에서 바라본 인생뷰라고 할까요? 저 너머의 무언가를 보게 돼요. 그러니 지금 실패해도 실패가 아니에요. 세상엔 눈앞에 보이는 것 말고도 다른 것이 있다는 걸 아니까요. 그러니 절박함을 연료로 삼아 보세요. 정말 절박하게 매달렸는지 생각해 봐요. 우리 삶의 빛은 아주 많은 색을 띠고 있어요. 살아내요. 살 수 있어요. 살아봅시다. 매일 딱 오늘만 하며 살아봅시다.’      

    



쪼이고 긁힌 삶의 변곡점에서 많이 흔들렸었다. 예상한 궤도를 벗어나기도 했지만 탈선이라고 못 박고 싶지 않다. 실패를 불안해하다가 나이 들면 억울할 듯 싶으니 궤도 이탈을 회복하기 어렵다 생각 말고 놀이 기구를 탄 셈 치자. 아찔하게 오르고 내리며 뒤틀려 돌 때는 언제 끝나나 싶지만 눈 깜짝할 사이 종착역에 도착한다. 안전바만 잘 메면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생 궤적에 부식된 나사와 볼트를 점검하는 일이다. 나는 자주 틀리고 잘 헤매며 가끔 엉망일 예정이다. 내 발 등을 찍거나 뒤통수를 잡는 일이 계속 생기겠지만 어쩌면 나의 삶은 누군가 꾸던 꿈일지 모른다. 실수도 살아있으니 가능한 신의 축복이다.


환갑 여배우의 은퇴 권유를 극복한 양자경은 202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말라고 했다.     


인생의 절정기인 화양연화는 트램펄린처럼 떨어지고 오르면서 재생한다. 가슴 쓸어내릴 일 앞에서 미소로 대응할 수만 있다면, 죽음을 간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생의 화양연화가 다시 꽃 필지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낡은 질문에는 새로운 답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