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스타킹과 구두 그리고 검은색 블라우스, 바지, 재킷을 입고 오세요. 반짝이는 목걸이나 귀걸이는 가급적 삼가 주시고요"
마지막 연습 후 단장님이 광고했다. 내일모레면 생애 첫 연주회다. 연주회 일정이 확정되던 날, TV에서 보던 움푹 파인 드레스와 화려한 조명을 떠올렸다. 명색이 연주회인데 머리라도 좀 만지고 가려면 아침부터 서둘러야겠다 싶어 근처에 일찍 문을 여는 미용실을 검색했다. 하지만 단장님은 깔끔한 올블랙 정장을 발표했다. 장례식장도 아니고 웬 시커먼스람 싶던 차, 연주회는 음악이 주인공이라서 연주자의 화려한 의상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설명에 머쓱해졌다. 아마추어 공연이긴 해도 명색이 연주회인지라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장장 10개월 동안 정기 연주곡과 성악가와의 협연, 앙코르곡까지 모두 14곡을 연습했다. 3일 후면 팸플릿에 플루티스트 누구라고 인쇄된 생애 첫 연주회가 열린다.
'별밤'을 듣던 그때 그 소녀처럼
막 세상 밖으로 채굴된 다이아몬드 원석이 햇빛아래에 빛을 드러내 진가를 발휘하듯 조명을 받은 은피리는 찬란하게 빛났다. 새소리 같은 고음이 매력적인 악기가 플루트다. 연주를 들으면 숲, 평원, 바다 어디든 상상하는 모든 자연 속에 있을 수 있다. 하다못해 빌딩 안 어느 방에서 들어도 세상의 고민과 근심을 차단시키는 능력을 가진 음악을 내가 연주한다는 사실에 설렜다.
나는 공연을 좋아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런 날 밤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꿈속에서 가수나 배우가 되곤 했다. 어떤 날은 관중의 박수갈채에 놀라 잠이 깰 때도 있다. 하지만 난 관종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의 시선은 부담스럽고 기가 빨린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는 걸 보면 감춰진 끼가 있나 싶지만 40년 넘는 세월을 확인한 결과 내게 특별한 재능이 없음을 알았다.
'별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이불속에서 숨죽이고 듣던 소녀의 가슴은 중년이 되어서야 행동으로 옮겨졌다. 최소한 십 년은 내공을 쌓아야 소리를 만든다는 말에 연주용 악기를 사기 위한 적금을 들었다. '나'를 위한 투자이면서 '나'와의 협약서다. 자꾸 꿈을 말하면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제대로 된 플루트를 산 날, 첫날밤을 치르는 신부의 옷고름을 헤치는 신랑처럼 떨렸다. 그렇게 음악의 세계에 발을 담갔다.
다만 매일이라도
첫소리 내는 데 3주일이 걸렸다. 솔라시도는 한 달, 한 옥타브를 완성하는 데 두 달이 소요됐다. 저음, 중음, 고음 3개 영역을 내는 은피리를 만만하게 본 지 6개월 만에야 끝이 보이지 않는 소리의 세계에 무릎을 꿇었다. 호흡에 집중하면 손가락이 안 돌아가고 운지를 쫓으면 발음이 틀리고, 그걸 신경 쓰니까 소리가 샌다. 은피리 부는 우아한 여성의 모습에 현혹되거나 리코더와 비슷하겠지 하며 덤벼들다가 열 명중 여덟아홉 명은 일 년 안에 포기한다더니 정말이다. 따뜻하고 맑은 새소리는커녕 금속을 긁는 빽빽이가 다반사다. 조금만 더하면 어지간한 노래는 하겠지 싶어 자꾸 진도를 나가려는 내게 속도가 아니라 소리의 결이 중요하다고 지인은 다독였다.
"매일 10분씩만 불어봐. 가까이에 두고서 하루도 거르지 말고 더도 말고 다만 10분씩만이라도 연습해. 그게 최선의 방법이야."
느린 진도에 조급한 나머지 서너 시간씩 주말에 몰아서 연습하다 관절이 뒤틀리는 몸살을 앓았다.
"음악은 살아 있는 거야. 욕심부리면 지쳐.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친구처럼, 애인처럼 옆에 두고 매일 연애해야 해."
왜 악기를 시작했나 생각하면 음악으로 뛰는 가슴 때문이었다. 후다닥 일을 해치우던 근성이 어서 빨리 저런 소리를 내야지 하는 서두름을 낳았다. 워커홀릭의 종식을 고하고 쉼을 위해 찾은 음악에서조차 수행이 아닌 실행이 먼저였던 셈이다. 그날 이후 10분, 20분씩 연습했다. 길게 음 내기, 정확히 내기, 복식 호흡, 메트로놈에 맞춰 발음하기 등 지루한 연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리는 기초를 가장 정성 들여 연습해야 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다.
저는 아마추어 플루티스트입니다.
혼자 하다 보니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솔로가 가지지 못한 화음의 묘미를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추고 싶은 생각에 아마추어 앙상블 단원이 되었다. 월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의 연습 시간을 위해 주말 동안에 일주일 먹을 장을 미리 보고 준비한다. 나이 들어 웬 음악이냐는 흰소리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당일 연습 후엔 지친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체력 안배를 위해 연습 전후로 웬만해선 약속을 잡지 않았다. 동병상련이라고 아마추어끼리 모여 하모니를 완성하는 월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생기 있는 날이었다.
10월 정기 연주회는 사십 년 넘은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공식 무대였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위의 지휘자와 연주자만이 모종의 사인을 나눈다. 긴장감에 바짝 몸이 세워졌다. 지휘봉이 올라가는 순간 10개월을 연습한 몸과 팔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박자를 세고 계이름 쫓기에 급급했던 내가 플루트의 관을 타고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지루하던 클래식이 화음과 강약으로 메시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80분의 시간이 흘러 연주를 마친 무대 뒤는 환호성이었다. 단원 모두 무사히 끝낸 뒤풀이를 풀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악기를 정돈하는 내내 어디서 틀렸다는 둥 어느 관객 반응 봤냐는 등 상기된 얼굴로 나누는 대화는 흥분 그 자체였다. 하나둘씩 대기실을 나가 가족과 지인에게 축하 인사를 받으며 사진 촬영하는 내내 행복해했다. 누구의 엄마였고 어느 직원이었으며 자녀가 독립한 집이 썰렁하다며 수줍게 왔던 사람이 플루티스트 000라는 이름을 달았다. 이날의 주인공은 당연 우리였고, 새 아마추어 예술가가 태어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