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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Jun 02. 2021

착한 여자의 딴따라 입문기


나는 착한 여자다


공식적인 24년 차 유부녀이자 육아 경력 23년, 직장맘으로 22년이다. 생계형이다 보니 말로만 듣던 육아휴직 한번 없이 내리 직장맘으로 살았다. 가족과 형제를 위한 희생을 천명으로 삼은 엄마 덕에 강박적인 성실함이 몸에 배어 어디서든 가만히 있질 못하고 몸을 움직여야 마음이 편하다. 여기에 내성적인 천성까지 더해 싫은 소리 참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끼니때마다 갓 지은 밥과 직접 만든 건강식을 하고 나면 밤 11시. 며느리와 아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행사와 인사치레를 치러야 했고, 혼인 신고서 한 장으로 생겨난 ‘낯선 가족’은 적응할 틈도 없이 의무의 연속이었다. 대한민국 여자라면 고단한 밥벌이와 함께 이름 대신 불리는 '호칭'에 맞춰 사는 일이 당연하다 여겼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없을 거라는 두려움


아이가 성년이 됐다는 건 더 이상 시간을 함께 공유하지 않으며, 일정을 함께할 새로운 타인이 생겼다는 의미다. 생활의 패턴은 가족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 이맘때쯤 몸 여기저기서 노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온다.

살아온 시간만큼 고달프다고 몸이 말을 한다. 비나 황사가 예보되는 날에 날궂이로 끙끙대다 간신히 잠드는

밤이 늘었다.


'내일도 오늘과 같겠지. 오늘이 어제와 같았으니까. 일 년 후나 몇 년 후에도 여전히 오늘처럼 살지 몰라. 시간에 쫓겨 동동거리다 그대로 늙고 말 거야.'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금 느끼는 삶의 피로함이 무기한일지 모른다는 막연함, 그로 인한 번 아웃의 시작은 무기력을 낳았다. 흥미와 미각, 욕구가 사라진 번 아웃은 몸과 마음을 늪으로 밀었고 사람 만나는 게 꺼려졌다.

가장 무서운 건 아침이었다. 새벽으로 향하는 시곗바늘을 뜬 눈으로 바라보다 동이 트기 시작하면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할 것 같은 공포에 눈물이 터졌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처음 며칠 안쓰러워하던 가족들이 보다 못해 일침을 날렸다. 강도의 칼날처럼 아프던 그 말은 환자인 내게 차츰 수술 메스가 되었다.



낯익은 타인, 나를 만나다.


거울 속의 '나'를 관찰했다. 거울의 '나'는 낯익은 타인처럼 익숙하면서 생경하다. 탄력과 생기가 조금 남은 얼굴 위로 주름이 몇 줄씩 나 있다. 거울에 비친 모습 위로 십 대와 이십 대의 젊은 그녀가 스친다. 회수권 두 장으로 온 시내를 버스 타고 쏘다니던 중학생,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땡땡이치고 담을 넘어 떡볶이를 먹던 아이, 학원 대신 대학로 연극을 보러 간 여고생, 배드민턴 코치를 보려고 공부를 핑계 삼아 학교 체육실 창문을 서성이던 사춘기 소녀였다. 학교에서 추천한 프랑스 교환학생을 지원했다가 여자가 어딜 바다를 건너냐는 엄마의 핀잔에 덤덤히 휴학계를 던지고 알바를 하며 방황하던 여대생이 내 심장 어디쯤에 웅크리고 있었다. 내 피 속에는 아직 다 소진되지 않은 한량 끼가 있다.


낭만 딴따라의 시작


규칙과 틀이라면 질색이지만 밥벌이를 위해 공무원은 계속해야 한다. 대신 잘 놀기로 했다. 짬밥도 제법이고

진즉에 승진을 포기했으니 새삼 억척스러울 필요가 없다. 꼭 필요한 야근을 제외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일했다. 사회생활에서 생긴 그렇고 그런 모임을 정리하면서 혹시나 도태될까 우려했지만 웬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 '집밥'에 적당히 안녕을 고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반찬을 사자, TV를 보지 않은 저녁과 합쳐져 자투리 시간이 제법 쏠쏠해졌다. 


먼저 음악을 시작했다. 어릴 때 한 번쯤 거친다는 피아노 학원의 문턱도 가보지 못했지만 쉽게 음과 악보를 외우던 나는 교회 지인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 삼십 분씩 플루트를 배웠다. 설거지를 끝내고 매일 20분씩 연습하던 시간이 5년, 10년이 지나자 나는 세 차례의 연주회와 봉사 연주를 하는 아마추어 앙상블 연주자가 되었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수련을 하면 어느 지점인가 풍경을 볼 수 있다. 어떤 뷰를 볼 것인가는 얼마나 올인했느냐의 차이다. 


새롭게 첼로를 시작하지만, 서두르진 않는다. 반 백 살의 나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스피드도 중요하지만 인생에는 근력이 꽤 필요하다는 걸 안다. 재촉한다고 꿈이 빨라지거나 멀어지지 않으며 중요한 건 내 몸이 그 속도를 감당하느냐이다. 꿈은 꾸는 순간부터 대기 중이다. 내가 들인 정성과 절박함이 깊어지면 조금 늦을지언정 꿈은 제 발로 찾아온다. 잦은 발령으로 임지를 바꿀 때마다 악기 하나쯤 배우고 싶어 하는 직원에게 플루트를 가르친다. 세상에. 음악 점수 70점 대인 내가 누구를 가르치다니 웃을 일이다. 퇴근 시간에 사무실에서 나는 피리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내게 플루트 바이러스라고 부를 때 기분이 좋다. 나는 이제 예술하는 B급 딴따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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