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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Sep 28. 2021

나는 가을을 앓지 않는다.

나의 냄새

집은 사람 냄새를 낸다.


'집' 하고 말할 때 떠오르는 아늑함은 후각이 맡은 익숙함에서 시작한다. 손때 묵은 살림도구, 한 공간에서 먹고 자던 구성원의 땀과 살내음이 벽지와 공기 배어있다. 매일 먹고 치우던 수많은 끼니와 웃고 울며 아프고 싸우던 낱낱의 흔적이 엉켜있다. 집은 사람의 호흡과 생기가 있어야 허물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집의 싸한 냉기는 온도가 아니라 생명력의 상실 때문이다. 사람이 곧 집이다.


아기는 후각으로 엄마를 찾는다. 배고픈 아기에게 허겁지겁 달려온 엄마의 땀이 밴 비릿하고 달큼한 살 냄새는 허기를 채울 젖 줄기가 가까웠음을 말한다. 분홍 입을 양껏 벌린 아기가 젖꼭지를 물자마자 허우적대던 손발을 멈추고 잠잠해지는 순간은 배를 채움과 동시에 따뜻한 안식을 느끼는 천국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가을 냄새는 무취다.


곧 가을이네 싶더니 난데없이 기온이 올라 긴팔 옷이 무색하다. 낮 동안의 청명한 하늘은 여기가 정말 내가 사는 동네가 맞나 싶을 만큼 푸르다가 밤이 되자 서슬 퍼런 찬바람을 낸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절기'나 바람 속에 스민 미세한 습기와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며 계절을 맞추는 사람이 있을까. 다년간의 통계와 실시간 위성으로 오늘과 한 주간, 한 달의 날씨까지 예고해 주는 날씨앱이 있지만 그럼에도 가을은 예상하지 못할 때 온다.


잘 익은 과일에서 나는 농익은 향이 아니지만 가을은 뜨거운 물리친 승자의 냄새가 난다. 여름의 정열을 식히는 내공을 지닌 가을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연인의 가슴에서 나는 괴로움 같은 게 있다. 얼마나 타오르고 몰입했든 정리하고 해산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일까. 찬 계절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전령이자 한 해를 정산하기 전에 풀지 못한 매듭을 풀도록 잠시 머무는 간극의 시간이다. 가을은 존재하는 듯하다 사라지는 무색무취이다. 생명을 피우는 봄과 뜨거운 여름, 세상을 일제히 얼음 상태로 만드는 겨울은 제 모습이 여실한데 가을은 잠시잠깐 스산한 바람을 휘날리다 사라진다. 나는 가을을 앓지 않는다. 아찔한 봉오리가 피고 꽃향이 요란한 봄을 맞을 때는 몸살을 앓지만, 가을은 아플 틈이 없다.



때때로 밤이 나를 삭힌다.

밤이 저문다. 목숨 같은 글쓰기 이후로, 매번 어둠은 모습이 다르고 냄새가 틀리다. 용을 써도 문장 하나 건지지 못한 무심한 밤엔 청국장 냄새처럼 진한 통증이 몰려온다. 두통과 엉킨 가슴사이에서 뭐라 쓸지 몰라 키보드 위를 방황하는 손가락을 때리고 싶을 땐 시큼한 음식물 냄새가 난다. 무심히 쓰던 말이 씹을수록 단내 나는 고슬고슬한 밥 같은 문장으로 태어날 때 더러 부드러운 향이 난다. 상상이나 생각으로만 존재하던 것이 문자로 형체를 찾을 때는 뿌연 흑백 영화가 칼라풀하게 색이 입혀지는 선명함처럼 달콤한 케이크 향이 난다.


엄마의 젖무덤 같은 비릿한 천국을 만들 수 있을까. 얼굴을 묻으면 눈이 절로 감기는 따뜻함과 허기를 달랠만한 향을 낼 수 있을까. 모성을 닮은 글을 소망하는 밤은 어둠조차 향기롭다. 나는 무슨 냄새인가. 사람이니 사람 냄새가 날 텐데, 나를 아는 이에게 무슨 냄새로 기억하냐고 묻고 싶다. 올 가을엔 추수하는 일보다 향기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 가을을 앓아보고 싶다. 여름과 겨울사이에 끼어 제 향 한 번 내지 못한 가을을 온통 나의 계절로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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