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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Jul 30. 2021

당신의 이름값

'이름'으로 산다는 건


삶은 할당된 이름을 완성하는 여정이다.  

    

평생 써야 할 고유한 제 이름 말고도 사는 동안 호칭 붙는다. 호칭에 맞는 역할을 충족하려면 우린 아주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아이가 자라 청소년과 성년이 되 사회가 붙여준 갖가지 호칭 때문에 삶은 바빠진다.

당신은 누구의 엄마나 아빠이며, 아들이거나 딸입니다. 또한 형이나 동생, 언니이자 사촌, 이모 등 친족의 지위를 갖습니다. 그리고 친구와 배우자, 동료, 선후배이기도 합니다. 당신 주위의 무리에게서 얻은 별명은 무한히 추가됩니다. 때때로 임산부 등 일시적인 명칭이 생길 수 있으며, 아줌마, 아저씨 또는 조직에서 정한 모든 직책을 받게 될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서 예외는 없습니다. 실직자, 구직자, 실업자 등으로 부르겠습니다. 사사로이 속한 모임의 부캐와 닉네임은 무제한 승인합니다. 특히 환자, 기부자, 죄수 등 사회가 공인한 명칭은 자의와 상관없이 부과되며, 당신에게 주어진 호칭은 죽을 때까지 유효하고 강조하건대 당신은 선택권이 없습니다.

                         -호칭 준수를 위한 사회백서 제1조-    


가끔 이름이 무겁다. 호칭이 갖는 무게를 소화하는 일은 줄지 않는 느낌이다. 그냥 ‘나’ 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무명이 되고 싶은데, 사는 게 다 그렇다는 말에 수그러진다. 자 방에서 자의 시간을 홀로 누릴 자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숨만 쉬어도 우리는 모두 ‘무엇’이라는 존재가 된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시의 말처럼 반드시 의미여야 하는지, 로 남으면 안 되는 건지 의문이다.


개인에게 주어진 이름너무 다. 하나의 이름으로도 나를 증명하기 충분할 텐데 나도 모르는 숱한 이름 명명된다. 최소한으로 살면 온전제 이름 하나만 남을 것을, 끝없이 새로운 호칭을 만드는 우리는 이름 과소비 삶이 닳는다. 결국  후에야 비로소 태어날 때 지은 최초의 이름 묘비에 남는다.


꼭 누구의 무엇이어야 하는지, 홀로 살면 생이 검소해지는지 궁금하다. ‘우리’라는 울타리와 '공동체'라는 결맹을 벗어날 수 없다면 삶의 한 토막을 떼어 완전히 이기적 '나'로 할애하고 싶다. 이름으로 맺관계를 유지하기 위 간과 감정이 바닥나면 지쳐 나자빠지 모른다.


원래 자신의 이름은 고유명사다. 세상에 유일무이다. 제 이름 하나로 자신이 드러나는 삶, 우리 삶은 이름을 찾는 여정이다.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이름값을 치르는 게 삶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은 단순하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자. 당신의 이름값은 얼마짜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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