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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Mar 08. 2022

제게 슈퍼어게인을 쓰겠습니다.

재능 따위 없는 작가의 심사

처음 브런치 작가로서의 설렘은 서너 달이 지나자 희미해졌다. 누군가에게 '읽힌다'라는 긴장감은 예상보다 강도가 셌다. 독자와 나 사이 합을 맞춘 공감을 찾는 건 어고, 사는 일에 기진맥진한 몸에게 사색은 사치였다. '쓰고 싶다'라는 욕망은 '써도 되나?'라는 두려움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혼자 쓰고 감상할 때는 몰랐던 일이다.


독서가 가장 쉬웠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의 구애에 가슴 뛰고 병든 멜라니의 임종을 하인들과 지켜봤다. 봄순이 돋은 언덕을 달리는 하이디의 그림자가 되어 알프스와 유럽을 동경하면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재가 쓰러졌을 땐 울어서 퉁퉁 부은 눈 때문에 다음날 친구들에게 놀림받았다. 독서는 내게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가는 통로였다.

 


읽는 거에 비해 잘 쓰지 못하네


먹방에 진심이라고 해서 셰프가 아니다. 휴일에 드라마 정주행 하는 덕후가 배우가 아니듯 책 좀 읽는다고 작가가 될 순 없다. 누구나 쓰지만 아무나 작가가 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읽기와 쓰기는 바탕이 다르다. 그럼에도 읽는 양에 비해 글은 별로라는 말을 들으면 노래 좋아하는 너는 왜 가수가 아니냐고 받아치고 싶다.

 

이쯤에서 문장을 쇼핑하기 시작한다. 삼시 세끼 먹는 밥처럼 익숙했던 일상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나오지 못할 때 갱년기를 탓하며 장바구니에 담듯 다른 작가의 글을 필사한다.

'왜 내겐 당신이 써낸 말이 떠오르지 않을까. 어째서 매번 단어와 숨바꼭질을 하는가.' 의문이 쌓인다.

표현하고 싶어도 단어가 빈약해 허둥댄다. 잘 읽히지 않는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밤을 새우는 통에 다음날 허둥지둥 출근하곤 했다. '타고난 천재는 없다'라는 말을 믿는 건 내 얄팍한 자존심 때문일지 모른다. 기를 쓰고 나온 나의 활자는 번번이 분리수거되어 삭제된다. 음치, 박치처럼 나는 타고난 글치일지 모른다.


모든 사람은 천재다. 그러나 나무를 얼마나 잘 타고 오르는지로 물고기의 능력을 판단한다면, 물고기는 자신을 평생 어리석다고 믿으며 보낼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깜냥도 안되면서 허상을 쫓는지 헷갈릴 때 자신을 떠올린다. 어디서든 활자만 보면 좋아라 하고, 책가방에 읽을 책 한 권만 있으면 신나게 집으로 뛰던 설렘은 진짜였다. 해마다 다이어리 몇 권씩을 끄적이는 쓰기의 행위는 중독 수준 아니었던가.


본방 사수하던 '싱어게인 2'가 끝났다. 벼랑 끝에 선 찐 무명의 가수에게 심사위원의 '어게인'은 동아줄이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워짐에 감격한 무명 가수는 절박하게 내공을 드러낸다. 재능이 있어도 저렇게 힘들구나 싶으면서 가진 게 없는 내가 홀가분할 때가 있다.


찐 무명이 대부분인 브런지 작가가 오래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좋아요'와 '구독'이 작가에게 '어게인'이지만 그마저도 인색하다. 그래서 나는 내게 슈퍼어게인을 쓰기로 했다. 매회 패자부활전에 임하듯 쓰기의 루틴을 반복하면서 나를 구제한다. 아직 글맛은 모른다. 어제와 오늘처럼 내일 도전하는 내게 기회를 줄 뿐이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계속해보려고요."

쉽게 듣는 말이 아니다. 주위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면 안다. 즐기다 마는 사람은 많지만 계속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만약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상상해 보면, 생각보다 꽤 괜찮은 나를 만나게 된다. 재주가 없으면 바닥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게 아니면 길이 없다거나 죽을 각오까지 하라고 고 싶지 않지만, 무명이기에 유명을 꿈꾸면서 재능 대신 노력으로 무장한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 오늘도 어게인 계속 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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