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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Aug 31. 2021

글을 쓰는 이적행위

B급 딴따라의 고민

나의 독서는 하꼬방 집 외풍을 피해 숨어든 이불속에서 시작됐다. 캄캄한 밤, 볼일을 보기 위해 주인집 셰퍼드집과 나란히 위치한 변소를 갈 때마다 읽었던 책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알프스 산맥을 질주하는 하이디의 머리칼과 하늘을 나는 웬디가 피터팬과 깔깔대는 상상을 하면 금방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어둠의 공포를

떨칠 수 있었다. 종이 인형 놀이가 지루한 어린 소녀의 겨울밤은 동화의 주인공을 상상하는 걸로 깊어진다. 


읽기에서 쓰기로 도약하는 데 한참 걸렸다. 쓰는 동안 헤매고 멈추길 반복하는 동안 내가 가진 독서력이 얼마나 빈약한지 알았다. 속독으로 부풀린 헤비급 몸에 경량급도 안 되는 영양 상태였다. 자신의 독서 수준을 알고 싶다면 글을 써보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활자 중독은 계속이고, 종내에는 여백을 마주한 채 쓰지도 못하고 시뻘겋게 충혈된 나를 발견한다.

그만두고 싶은데 '글'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백지에 박힌 까만 글씨는 부화 직전의 알처럼 신비롭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 커서의 깜박임은 유혹적이다. 매번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면서 쓰다가 지우기를 하다 보면 그만둘 법도 한데 여백을 채우려는 욕망을 누르기 어렵다.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글 감옥에 갇히고 탈출하는 이적 행위는 거의 중독 수준이다.



이 글을 왜 썼지?


쓸 당시엔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희미해지고, 생각이 비어있는 잔을 겉모양만 대충 포장해서 독자를 자극하려는가 싶다. 가뜩이나 삶이 피곤한 독자에게 과연 시간을 들여 내 글을 읽으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자만 만족한 글은 불량 식품이다. 자신이 활자로 쓰레기를 만드는 건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출간되는 책 대부분이 제대로 빛 한번 보지 못하고 창고에 쌓이는 현실인데, 호응 없는 자신의 글을 고집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노트북 앞에서 한참을 멍 때린 후에야 어느 작가가 말한 '쓰는 이의 책무'가 떠오른다. 쓰는 건 자유니까 내 맘껏 쓰고 싶을 때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책무 같은 건 이름 있는 작가에게나 해당될 뿐 나와는 상관없는 말인 줄 알았다. 누가 내 글을 읽겠냐며 무심한 척하지만 혹 누가 읽어줄지 모른다고 기대하는 나는 B급 딴따라다. 사기도 밑천이 필요하듯 건방진 치기를 없애고 젠틀하게 쓰고 싶지만 용쓸 재주가 없다. 그럼에도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더운 날 엉덩이를 붙이고 책상에 앉아 있는지 모를 일이다. 


쓰고 싶은 글에서 읽고 싶은 글로의 도약 지점이 생겼다.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고른 선율을 준다.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감상할지는 청자의 몫이다. 아마추어 연주자로 입문하면서 음악이 주는 평화와 치유를 체험한 나는 '활자' 역시 한 모금의 생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말을 글로 바꾸는 게 영 어색하다. 다정한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자꾸 리허설 중인 글이 발행된다. 비록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괜찮다. 나는 치열하게 도움닫기 중이다. 곧 구름판을 디딜 거고 할 수 있는 만큼 도약할 예정이다. 전력을 다해 뛰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뛰는 걸 반복하면 된다. 거리가 좁혀지지 않은 저만치에 구름판이 있는 걸 보니 오늘도 나는 뛰다 넘어진 괜찮은 B급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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