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딴따라 Jul 10. 2021

곰 사람 탈출기

100일간의 글쓰기.

'말'이 대화 도구지만 그 외에도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한다. 영상과 예술, 텔레파시같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수단 중에 '문자'를 애용하는 라이터(Writer)에게 100일 글쓰기를 추천하고 싶다.


'100'이라는 숫자는 두 자릿수보다 넉넉하고 목표치나 기준으로 삼기과하지 않은 당함이 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수헤아리기 좋고, 100을 목표로 뭔가를 해냈을 때 적잖이 폼이 난다. 많은 이들이 백일기도, 백일잔치, 디데이 100일 등 백이라는 숫자를 선호하는 이유다.


 '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는 백일동안 마늘을 먹고 인내해 사람이  웅녀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100일 동안 거르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을 형성하는 게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형식이나 제약 없이 매일 쓰면 되기에 언뜻 단순해 보인다. 일기 쓰는 셈 치거나 습작이나 메모가 있으면 차용할 수 있으니 수월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부분의 30명 무리 없이 글쓰기 인증을 했으니까.


글쓰기의 첫 고비는 40일이 넘으면서부터였다. 매일 새롭게 쓰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예전에 적어둔 글을 인증하면서 날짜를 채우는 일도 뜨겁다. 편지와 독후감, 감상평과 일기로 60일의 여정 채워가면서 절반 이상이 포기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턴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포기하긴 싫고 오늘은 뭘 써야 하나 매일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본격적인 글쓰기의 괴로움이다. 써야겠는데 쓸 재료가 없다.

 


자신을 인터뷰하는 경험


글은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부산물로 남는다. 임신과 출산을 거쳐 새 생명이 태어나듯 한 편의 글은 수많은 습작을 거친 가공 끝에 나온다. 글을 쓴 기쁨보다 쓰는 동안의 통증을 경험한 작가가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지만 쫓기는 시간과 창작의 부재에 내일 쓰는 유혹에 빠진다. 오늘은 바빴고 다른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며, 어떤 오늘은 무기력해서 미룬다. 쓰려는 이유는 단순한데 쓰지 못하는 핑계는 무궁무진하다.


그래도 책상에 앉아야 한다. 100일 글쓰기 여정은 온전히 자신을 인터뷰하는 시간이다. 초보 작가들이 특별한 포인트, 그러니까 슬프거나 외롭다는 식의 감정이 요동칠 때 는 습관은 하소연이나 개연성 없는 넋두리가 되기 십상이다. 100일 글쓰기 하프라인에서 고전하는 사람 중에 이런 부류가 꽤 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다채로운 감정을 글자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단어를 고르고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 보면 감정의 찌꺼기는 가라앉고 고유한 파동만 남는다.

 

감정이 정제 작가는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이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사는 일이 그렇다. 죽어라 죽어라 하지만 죽지 않은 건 살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괴롭고 외롭다는 말로 100일을 다 채우기가 사실 어렵다는 걸 깨닫는다. 세상이 온통 모순 같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가까이에 기적이 있고 이웃의 작은 베풂이 있다. '아주 최악은 아닌 거야' 삶의 위로를 찾아가면서 생각의 지평이 한 뼘씩 넓어진다.     


글 고치를 짓다.


현대는 잘 질문하지 않는다. 순수한 호기심은 귀해졌다. 100일 글쓰기에서 60일을 넘긴 초보 작가의 일상은 전과 다르다. 평소와 같은 출퇴근 길과 거리의 풍경, 사람들표정과 날까지 어제와 다른 모습이다. 작가의 관심 어린 눈은 세상을 관찰하는 일에 예민해지고 있다.


100일의 고지를 눈앞에 둔 습작생의 문장은 하고 싶은 말을 뱉으면서 시작한다. 더 이상 오늘 하루 무탈했다 식의 기록을 하지 않는다. 힘겹게 80일을 넘겼는데 이제 와서 낙오될 순 없다며 이를 악문 작생의 삶은 예전과 달라졌다. 타인을 향한 시선이 넓어진 도전자의 몸에 글 근육이 붙기 시작하는 시점도 이때부터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상에서 글감을 건질 수 없다면 독서를 권하고 싶다. 갈급할 때에 읽는 독서는 문장을 수집

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배고픈 짐승이나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책에 몰입한 초보 작가는 언어의 숲에서 영감을 얻는다. 훌륭한 작가의 책은 최고의 사수다. 


90일째, 끝이 보이는 쓰기는 간결해지고, 고비를 넘기며 버텨온 자신을 응원한다. 마지막 100일의 글에 마침표를 찍고 자정을 넘기는 순간, 동굴을 벗어난 웅녀처럼 도전자는 곰 사람이 된다. 오직 쓰겠다는 일념으로 100일을 완주한 도전자는 네댓 명뿐이다. 레이스를 마친 그들에게 어느 차원을 통과했음을 말해주고 싶다. 이제 세상은 그들에게 글 재료가 넘치는 다중 세계가 되었다.


봄으로 시작해 초여름의 찐득함으로 끝난 '곰 사람 탈출기-100일 글쓰기' 이후 한 달여를 원인 모를 두드러기로 고생했지만 뿌듯하다. 단언컨대 설익은 100일의 초고는 언제고 당신이 길을 잃을 때 빛을 비추는 북극성이 된다.


이전 05화 글을 요리하는 셰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