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딴따라 Jul 07. 2021

글을 요리하는 셰프

쓰기조차 독학인 사람에게

요리를 잘하는 사람 대부분이 미식가다. 예민한 혀의 감각은 재료가 갖는 본질을 잘 찾아낸다. 원 재료의 성질을 살리면서 능숙한 조리를 가미한 셰프의 요리는 그래서 경이롭다. 언어로 만든 좋은 글맛을 본 독서가가 직접 글을 조리하는 셰프가 되고 싶은 것도 어쩌면 미식가의 기질 때문인지 모른다.         

 


처음엔 가벼운 필사로 시작한다. 맘에 드는 문장이나 단어를 옮기는 수작업은 글의 감동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든다. 조정래 작가의 자녀처럼 태백산맥 전체를 필사하는 기백이 있다면 모를까 나처럼 보통의 사람이라면 일부 문장을 곱씹으며 적는 게 낫다. 가급적이면 손으로 쓰기를 권하는데, 수작업에서 얻는 느림 덕에 문장을 되새기며 읽을 수 있다. 필사가 목적이 되면 필사를 위한 베껴쓰기나 기계적인 작업이 된다. 통찰과 사유를 위해 써야지, 생각 없이 무리하게 적어가며 당신의 관절에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    


완전한 문장은 발효한다.


매운맛 같은 자극은 감각을 쉽게 무디게 한다. 인스턴트 같은 향미를 즐기면 금세 중독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다양한 맛을 맛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평소 문학과 인문학을 즐기지만 책을 주문할 땐 새로 나온 경제서나 사회과학을 눈여겨보고 함께 구매한다. 습관이 된 출근 루틴의 하나는 그날의 신문 사설, 칼럼을 읽고 발췌를 하는 일이다. 구미가 당기는 글의 제목과 지은이를 시작으로 글의 주장, 핵심 문장과 함께 제한적으로 쓰인 접속사를 적는다. 마지막에는 발췌한 주장에 대한 나의 의견을 단다. 혼자 글쓰기를 하다 보니 감성팔이나 갈피를 못 잡는 방향감각 때문에 논리와 주제가 확실한 글을 발췌하는 게 문장 훈련이 된다. 한정된 지면에 주제를 또렷이 피력하는 논평의 분석은 상당히 좋은 문장 공부다. 기록한 문장을 분석하다 보면 자신이 선택한 문장마다 공통된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걸 보면서 자신의 성향이나 잣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색을 입히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좋은 글은 읽을수록 처음과 다른 맛이 난다. 맛이 변한 게 아니다. 완전한 문장은 잘 삭힌 홍어나 발효된 김치처럼 발효점이 다른 맛을 낸다.




 우물 안 개구리 저자
 

필사가 익숙해지면 슬슬 심화 단계에 접어든다. 필사한 문장의 저자가 되어서 퇴고와 각색을 하는 단계다. 묘사의 변화, 스토리의 각색, 서술어와 주어를 재배치하면서 자신이 습관처럼 사용하는 표현과 작법을 연구해야 한다. 유의해야 할 건 문학과 비문학 대부분의 장르를 시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 분야의 독특한 문체와 구성, 표현력을 독학으로 배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처음 음악을 배울 때 많이 듣고 흉내 내듯이, 충분히 쓰고 계속 쓰면 조금씩 자신의 색채가 만들어진다. 불편한 묘사는 자연스러워지고, 질질 끌던 문장은 간결해진다. 방향성이 없는 글이 주제를 말하고 불일치하던 주어와 술어가 자리를 잡는다. 


편식하는 독서가는 대부분 이 단계에서 멈춘다. 좋아하지 않는 장르는 재미없고 귀찮다. 마땅히 소홀하게 되는데 비록 잘못은 아니라 해도 당신이 타고난 문장가나 별도의 코칭을 받는 게 아니라면 몸에 좋은 약이라 생각하고 계속할 것을 권하고 싶다. 다만 바라는 것은 홀로 독학하는 라이터(writer)가 우물에서 들리는 자신의 공명을 세상의 모든 소리인 줄 착각하는 개구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홀로 쓰기의 출발


심화 필사가 끝나면 본격적인 쓰기이다. 홀로 쓰기의 출발이자 글 발자국이 남는 시점이다. 더 이상 하얀 여백은 나를 위한 무대가 아니라 감옥이다.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는 현실과 형편없이 초라한 자신의 글에 좌절하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글을 퍼올리는 작업은 아주 쉽게 사람을 나가떨어지게 한다. 많은 사람이 끄적이기는 쉬워도 쓰지를 못하고, 썼다 해도 책을 낼 엄두를 못 내는 건 자신이 갖고 있는 글샘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독서와 필사, 생각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만이 마르지 않는 자원을 갖는다. 훌륭한 셰프도 처음부터 환상적인 레시피를 갖고 있지 않다. 재료를 만지고 다듬으면서 적절한 양과 불의 온도, 냉기, 조리 시간까지 세심한 관찰과 연습덕에 최고의 궁합을 찾는다. 그리고 새로운 요리를 창조한다. 


쓰기의 계단에 올라선 당신은 장기 레이스를 출발한 주자다. 처음 플루트를 배울 때 몇 년만 연습하면 유튜브에 나오는 연주자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공자처럼 하루의 대부분을 연습에 매달렸다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일 생계형 직장녀인 나는 그럴 여유나 돈이 없다. 조금씩 꾸준히 연습을 하고 10년이 지나서자 나만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나 알지만 쉽게 잊는 진리, 성실하게 마음을 다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걸 체득했다. 몇 년이 걸리든 포기하지 않으면 글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 피드백에 목마르지 말고 그럴 시간에 내가 나를 응원하는 박수를 치자. 한 글자라도 더 쓰자. 신이 사람에게 준 재능은 각각이지만 공평한 시간을 주었으니 힘써 달리기만 하면 된다. 

이전 04화 글은 독자가 길을 잃지 않게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