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딴따라 Jun 15. 2021

독서가는 미식을 즐겨야 한다.

작가의 레시피

“잘 지내?”

“응. 그럭저럭 지내.”

별일 없는 걸로 안부가 갈음된다. ‘잘’이라고 묻는 순간 안부는 일신의 사소로운 일과 특별한 사건, 상대와 주변 사람을 포함하여 일어날 법한 범위로 넓어진다. 지나간 몇 달간의 일상과 들쑥날쑥했던 그때의 감정을 나열하자니 가볍게 던진 안부의 답으로 거추장스럽다. 대다수 오랜만의 안부엔 '그럭저럭'이 정답이다. 


짬뽕 독서


초등학교 시절, 마당 있는 이층 양옥집의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았다. 계몽사 출판 부장인 주인집 일층은 거실 한쪽에 피아노가 있고, 그 뒤로 장식장 가득 책이 꽂혀 있다. 4인용 패브릭 소파를 지나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여덟 명은 족히 앉을만한 식탁과 싱크대, 진열장이 가지런한 주방이 있다. 계단을 오르면 이층에 두 개의 방이 마주 보고 있는데 하나는 주인집 아들 방, 하나는 나와 가족이 사는 방이다. 집 안에 계단이 있는 게 신기했던 나는 주인집 식구가 없을 때 계단 중간까지 내려가 일층을 훔쳐보곤 했다. 내 또래의 주인 아들 방은 두 개의 책상과 의자, 전집이 빽빽한 책장과 옷장이 있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는 남의 새끼라도 책 읽는 모습이 이쁘다며 언제든 빌려가서 보라고 했다. 마음껏 읽어도 좋다는 말에 나는 허락된 이층의 책 말고도 이따금 일층에 내려가 몰래 장식장 안의 책을 빼왔는데, 책 모두를 섭렵하는 데 일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언제 이사 갈지 모르는 셋방살이 처지에 볼 수 있을 때 봐두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긴 것이 지금의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라는 강박이 되었다. 독서에 허기진 그때를 생각하면 읽은 게 아니라 먹어 치웠다는 표현이 맞다.


작동화에서 시작해 명작 전집, 화보, 삼류 소설과 일반 상식, 도안 교본까지 읽었다. 예쁜 동화를 읽은 다음 날엔 사창가 살인을 다룬 일본 소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폭염으로 더운 바람을 토하는 선풍기 앞에서 젖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몇 시간이고 읽다가 목과 엉덩이에 땀띠꽃이 활짝 피곤했다. 한 달에 한 번씩 희석한 농약을 피워 바퀴벌레를 잡던 날, 일 나갔다 온 엄마는 문 틈으로 삐져나온 농약 냄새에 취해 반쯤 눈이 풀린 나를 보고 놀라 찬물을 머리에 부었다. 이후로 농약을 피운 날은 최소 3시간 이상 방 근처에 얼씬 말라는 주의를 들은 후부터 나는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두세 번째쯤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었다. 여름휴가가 뭔지 모르는 집에서 긴긴 여름방학동안 할 수 있는 거라곤 책 읽기와 가끔 주인아들이 같이 놀자고 불러줘야 가능한 부루마블 게임뿐이다.  


지금처럼 그 시절에도 두 명의 여자가 짝을 이뤄 좋은 말씀을 전하겠다고 다녔다. 한 번은 호기심에 사자를 끌어안은 아이와 백인과 흑인이 손잡고 어딘가를 가리키는 붉은 책자를 받았다가 웃음 헤픈 여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녀들이 기계 같은 미소와 가는 목소리로 언제부터 말씀 공부할지 집요하게 묻는 통에 나는 울어버렸고, 없는 살림에 손님 접대한다고 요구르트를 구해온 엄마가 황급히 들어옴으로써 간신히 황당한 천국 이야기에서 풀려났다.


세상이 온통 모순 같던 시절, 고3이 견뎌야 하는 입시 스트레스에 찌든 내게 철학은 유혹적이었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가슴을 탁 치는 꽤 그럴싸한 문장을 노트에 적으며, 니체와 내가 통했다는 짜릿함에 으스대던 잡탕 같은 독서 이력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작가의 레시피를 맛보다.


독서를 과식하는 사람이 있다. 나처럼 무조건 읽고 보자는 식이다. 먹기에 급급한 사람이 미식가가 아닌 것처럼 진짜 독서가는 글맛에 민감하다. 골고루 읽되 가급적 다양하게 곱씹어 읽어야 한다. 


처음 책을 접하면 제일 첫 장에 날짜를 쓰고, 구입한 서점이나 지금 상태를 간단히 쓴다. 읽기 전에 방명록을 남기는 셈이다. 언제고 다시 들추면 처음 책을 읽을 때의 나를 회상할 수 있다. 이력처럼 남은 방명록덕에 어떤 책은 해마다 또는 몇 년 만에 재독함으로써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책을 두고 다른 차원에서 만나는 신비를 경험한다.


한 번에 완독해도 좋고 조금씩 읽어도 상관없다. 제법 두껍거나 내용을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을 때는 목차대로 나누어 읽는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책을 읽을 때는 다른 책과 교차하면서 읽는데, 사회과학을 읽을 때 시집을 보는 경우가 그렇다. 난해한 독서가 주는 피로를 이런 식으로 매운 논리와 달콤한 감성을 버무려 독서의 진가를 체험한다. 독서가는 대식뿐 아니라 미식하는 사람이다.  


처음 읽을 때는 가슴에 와닿는 문장을 바로바로 표시한다. 밑줄을 긋거나 형광인덱스를 붙이는데, 단락이나 목차 전체가 맘에 들 때는 페이지에 동그란 점을 찍는다. 책이 더러워지는 걸 개의치 않는 사람은 아낌없이 자신의 버릇이나 습성이 드러나게 표시하는 게 좋다. 표식은 나를 말해주는 이모티콘과 같다. 여백에 모르는 단어의 뜻을 써놓거나 읽는 순간 떠오른 영감과 느낌을 적어도 좋고, 읽는 흐름을 깨기 싫다면 표시만 한 뒤 읽고 나서 그 부분만 재독해도 괜찮다. 어물쩍 넘어가며 읽는 독서는 영원히 작가의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수준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글맛의 일부는 능숙하게 단어를 조리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레시피에 있다.  

이전 02화 하고 싶은 말을 해야 원귀가 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