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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Jun 05. 2021

바벨탑의 입장을 허락합니다.

작가를 시작하는 당신.


아날로그의 부활


입맛대로 인터넷을 즐기는 시대에 닥친 '문자’의 위기. 팬데믹이 안긴 비대면화 경험은 소통의 변혁을 가져왔다. 영상 콘텐츠가 붐을 일면서 읽고 생각해야 하는 활자의 시대는 막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고사(枯死)할 것 같던 문자는 살아남았다. 무차별적인 영상과 자극으로 피로해진 이들이 아날로그를 찾기 시작한 덕이다. 짤방에 넋을 잃은 시간은 허망하고, 시각 이미지가 주는 중독성은 질리기도 금방이다. SNS를 순회하는 일은 외식 감미료에 질린 입맛이 된장찌개와 집밥을 찾듯 아날로그를 그리워하게 한다. 활자는 그렇게 소생한다. '나는 뭐지? 인생은 뭘까?' 자신을 돌아보는 생각이 질문을 낳고, 답을 구하려 텍스트를 탐색한다. 검색 기능을 사용해야 서점을 찾을 수 있는 지금, 문자의 부활은 기적이다



작가는 창조자다.


문자애호가에게 쓰는 행위는 오랜 지병이다. 활자 중독을 단순히 문자에 집착하는 증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짜 중독자는 활자 고유의 세상에 있다. 그 세계에서 주인공이나 관중이 되고, 전지적 신이 된다. 밤사이 무수히 차오르던 상상을 온몸으로 쓰던 작가는 동이 트면서 미완성 세상의 창조자가 된다. 작가에게 창조 행위를 멈추라는 건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반송장이 되라는 말이다. 활자 중독자의 유일한 처방은 활자의 주인이 되라는 소견서뿐이다.



이 길이 맞습니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기쁨도 잠시 글을 쓸 때마다 선고를 기다리는 피고인의 심정이다. 작가는 활자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노예다. 글을 지휘하는 주인과 결핍의 글로 괴로워하는 노예 중 무엇이 될지 매번 판결을 받는다. 공식 플랫폼에 노출된 자신의 글이 일면식 없는 타인에게 읽히는 무게와 외면당한 글이 잡문으로 추락할 때의 고독을 견뎌야 한다.


언어로 세워진 거대한 바벨탑 안에 입장한 작가에겐 계단을 오르는 일만 남았다. 꼭대기까지는 온통 계단, 일방통행인 탓에 내려올 수 없다. 피고름 끝에 수백 층에 오른 대가와 단 몇 층에서 앓아누운 사람, 창작의 고통으로 가사상태인 다수가 있다. 그럼에도 바벨탑 밖은 여전히 문전성시다. 탑의 꼭대기에 올라 자신의 언어를 드러내고 싶은 무리는 줄지 않는다. 


탑 안에 들어서면 첫 번째 인터뷰를 맞닥뜨린다. 당신은 어떤 작가입니까? 계단을 오를 때마다 질문의 관문에 선다. 왜 글을 씁니까?  먼저 올라간 선배의 문장이 뿜는 후광에 넋을 잃으면서도 수없이 자신을 인터뷰한다. 이 길이 맞습니까이제 막 로비에 들어선 신입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방금 제 한계를 넘었습니다. 나는 내 길을 낼 겁니다.”

바벨탑 어느 층에서 길을 닦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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