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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Jun 02. 2021

이중생활을 권합니다.

내가 나이 들었다는 걸 확연히 느낄 때가 과거의 추억거리를 소재삼아 대화하는 일이 잦아졌을 때다. 어쩌다 보니 미래보다 과거가 익숙해졌지만 아직 '라떼는 말이야' 식의 꼰대로 불리기엔 이른 중년이다. 백세 시대가 이렇게 빨리 닥칠 줄 몰랐다. 열심히 달려온 40, 50의 나이는 인생의 고지를 향해 여전히 질주 중이고, 노후가 길어질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황혼을 준비하자니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된 기분이다. 어른이라 하기엔 살 날이 많고, 젊다기엔 독립한 자녀가 있는 사회 짬밥이 녹록한 경력 세대다. 중년은 수명 연장 사회에서 젊지도 늙지도 않은 제3세대가 되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더 열심히


중년의 부모 세대는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시대를 살았다. 내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번듯이 결혼시키면 생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겼다. 노년에 손자, 손녀의 재롱을 즐기다 자는 듯이 죽는 게 마지막 소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중년은 내 집 마련에 목숨 걸지 않는다. 안정적인 노후가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를 마련하는 일이 아님을 안다. 혼자 살아도 좋고 결혼했지만 자녀 없이 살기도 한다. 자녀가 제 살 길 찾아 나가서야 비로소 독립을 하는 중년은 예전 같으면 해야 할 의무를 다한 자유를 얻었다고 했겠지만 요즘의 중년은 남은 숙제가 있다. 늙은 부모의 늘어난 수명만큼 부양할 시간이 길어졌고, 맨주먹으로 치열한 경쟁과 고물가 사회에 뛰어든 자녀에게 지원 사격을 해야 한다. 50세가 넘으면서 여기저기 삐그덕 거리는 몸을 손 봐두어야만 자신의 늙은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 


고무줄처럼 늘어난 평균 수명 때문에 중년 세대는 오도 가도 못하고 끼어있다. 그래서 중년은 피곤하다. 사회는 한물가기 시작한다며 자리를 비우라는데, 열심히 일한 중년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광고 카피처럼 떠나면 자칫 돌아올 곳 없는 중년 파산이 될까 두려운 게 과연 나뿐일까.     


여자 소녀 자유 - Pixabay의 무료 사진

중년은 후기 청년이다


자신이 도달한 정점에서 반강제로 하산하다 보면 허무하고 억울할 때가 있다. 새삼스레 '성실'을 인정받으려는 건 아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금의 모습이 전부인양 치부될 때마다 갱년기니 사추기니라는 말을 붙이며 아프다고 변명하고 싶다. 이럴 때 사회가 제공하는 정보라는 게 그렇다. 출처가 불분명한 건강 정보, 미심쩍은 사상으로의 유혹,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갖가지 쇼핑과 여행을 권유한다. 중년은 생산성이 없다고 단정 지은 대부분의 처방은 여생, 오직 남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일 뿐이다. 정보를 기웃거리며 내게 맞는지 우왕 좌왕 하다 보면 노년이 성큼 다가서면서 일정 나이가 되었으니 당신을 이제부터 '노인'이라고 부르겠다고 공인해 버린다.  


중년은 아프다. 숫자로 찍힌 '나이' 때문에 한물 간 세대로 밀리면서 병든다. 툭하면 꼰대라고 불리지만 아이돌 힙합에 둠칫 거릴 줄 알고, IT에 약해도 새로 출시되는 전자 기기의 성능에 열광할 줄 알며, 밥심으로 살지만 브런치를 즐기는 세대다. 멀찌감치 놔야 보이는 노안이지만 SNS 뉴스를 공감할 줄 알고, 배낭여행은 버거워도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나 세컨하우스를 만들 줄 안다. 건망증 때문에 자주 좌절하지만 연초마다 버킷리스트를 적으며 설레는 나이다. 세뇌형 교육시스템에 길들여졌지만 나의 또 다른 모습이 있을지 모른다며 방황할 줄 아는 세대가 중년이다. 


중년이 가진 꿈은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완료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봐 오히려 두렵다. 실패가 겁나서가 아니라 좌우 형편을 재야 해서 머뭇거릴 뿐이다. 도전하다 실패해도 좋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아도 소소한 자신의 꿈이 제 모습대로 만들어지는 걸 체득하고 싶은 게 중년이다. 고로 중년은 아직 청년이다.    


이중생활을 권합니다.


본캐와 부캐가 성행이다. 나 역시 중년에게 이중생활을 권한다. 우린 생계형 사회인으로 살아야 하지만, 자신을 끄집어내는 몸부림이 필요하다.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고, 춤이 좋으면 춰야 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

며 자신의 존재를 찾아도 좋다. 건강한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걸 주저하지 말자. 자신의 재능을 찾는 데 성공했다면 재취업을 시도해도 좋고 전문성 있는 취미를 통해 재능기부를 해도 성공이다. 자신의 사회 활동과 봉사, 아마추어적인 재능을 SNS로 인증하자. 꿈을 자꾸 드러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중년에겐 지금 하지 않으면 다시 못할 수 있는 시간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중 

생활자가 되기를 권한다. 노년에 곱씹고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한참을 수다 떨 수 있는 추억, 그런 이벤트를 만드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가꾸는 자만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세상의 후기 청년들이여, 이중생활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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