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물질적인 것은 다 물질적인 것이 되고 싶어 해. 영혼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생각은 입으로 발화되고 글로 쓰이기를 바라지. 하늘을 날아다니고 벽을 통과하는 게 지긋지긋한 유령들은 육신을 빌려 의자에 앉고, 걸어 다니고, 잠을 자고, 고통을 느끼고 싶어 하지. 누가 이름을 불러 주길 원해. 존재하고 싶어 해>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잠”중에서
‘포유류의 뇌’에 살던 감정 뉴런이 ‘인간의 뇌’에서 진화한다.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오류 투성이 감정 중에 사랑만이 두려움을 상실하고 분노 따위 집어치우라며 쾌락에 몰입한다. 사랑에 도취된 우리는 지금의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길을 잃는다.
사랑은 사회적 진화를 한다.
미움, 질투, 욕망 등 여러 색깔로 체화되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사랑은 폭주를 멈춘다. 폭발적인 발화로 타버리기 전에 ‘결혼’이라는 행위를 감행하고, 사회가 규정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자식을 낳음으로써 둘 뿐이던 사랑의 대상은 집단으로 확산된다. 감정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가시적인 형태로 진화한 셈이다. 의무와 책임으로 결속된 울타리 안에 '우리’라는 소사회를 만듦으로써 사랑은 외로운 인간을 유기 불안에서 해방한다.
사랑도 물질이 되고 싶어 한다.
가슴과 머리에 차오른 사랑은 살갗을 비비고 온기를 나누며 육체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관계를 통한 결합이야말로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어떠한 감정도 타인을 자신에게 흡수하지 않는데, 사랑만이 눈과 귀가 멀어 상대에게 돌진한다.
사랑도 분류되고 포장된다.
숱한 사랑이 명멸하면서 사랑의 대상은 ‘누구’가 아닌 ‘무엇’으로 대체되고, 파괴하는 행위까지 용인한다. 사랑의 정의는 수없이 많지만, 사랑이 끝난 후에 남은 저장고엔 '기억'이라는 흔적만 남는다. 개인의 역사가 된 기억은 화석이 되어 추억으로 꺼내진다. 사랑은 자국을 남긴다. 우리의 뇌, 신대륙의 어느 지점에 그어진 자국이 행여 오염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