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마추어 가해자에게 고함

영화 '목소리의 형태'로부터

by 낭만딴따라

왕따를 소재로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 '목소리의 형태'는 애니메이션이다. 자극적이지만 사건은 소소하고 음악은 고요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인 감성적인 일러스트 화면은 전환이 느리다. 하지만 반전 없는 영화임에도 졸리지 않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상처 입은 두 친구가 있다. 피해자로 동정을 받은 한 명과 어쩌다 보니 가해자가 된 어설픈 소년이다. 내상을 입은 가해자 소년은 그날 이후 땅만 보며 느리게 걷고 느리게 말한다. 영화가 느린 게 아니라 소년의 시간이 그날을 기점으로 흐르지도 멈추지도 않은 무중력 상태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실은 나도 저 소년 같은 경우가 있었는데 라며 모종의 고해성사를 한다.


# 시간은 제각각 달린다.

10대의 하루는 길다. 그들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세상의 한 꼭짓점이 확 변할 만큼 까마득하다. 오늘과 내일도 여전히 십 대인 이들에게 10년은 한없이 게으른 시간이다. 오십을 넘어 죽음을 떠올리는 일이 익숙한 나이가 되어서야 시간은 '존재'가 아니라 빠른 '현상'임을 안다. 해가 뜨고 지며 눈을 떴다 감으면 내일은 이미 저문다. 달이 바뀌고도 한참 뒤에야 거실 달력을 넘기는 습관은 잠깐이라도 시간을 붙잡아 보려는 나의 응석이다.


#어린 폭력자

쓴 커피가 익숙한 나이가 되었다.

별것 아닌 아픔에 죽을 듯이 울고 도대체 정의라곤 없다며 세상을 비웃던 젊은 날이 내게도 있었다. 일탈로 일상을 해소하고, 친구 하나에 세상이 밝고 어두워지는 십 대는 서로에게 쉽게 상처 주는 어린 폭력자다. 상처를 받거나 준 사람 모두 세월이 익은 후에야 당시 통증의 원인을 깨닫는다. 모두가 어설펐다. 서투른 감정과 행동 때문에 누구나 아팠다.

자의가 아님에도 친구에게 흠집을 낸 자신이 미운 어린 십 대는 우울하다. 용서를 구하고 실수를 만회할 방법을 모르는 소년이 할 수 있는 건 자책뿐이다. 상처가 덧나 딱지가 앉고 나면 새 살이 돋는 걸 모르기에 자신을 방치함으로 아이는 시간을 견뎌낸다. 딱지대신 반복해서 곪는 소년의 통증은 계속이다. 나 아파요라고 소리를 내야 누구든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모른 채 몸만 커진 어린 어른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된다. 상처가 덧난 게 아니라 상처를 외면한 자신이 병이 된다.



# 나는 희망한다.

의도치 않은 세상의 아마추어 가해자에게 말하고 싶다. 충분히 아프고 괴로워하며, 죽고 싶을 만큼 앓자. 그런 다음엔 거울 속의 '어린 자신'이 변하기를 소망해야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어설픈 자신'이 충분히 아프고 나면 용서를 생각해야 한다. 가해자이기에 용서를 구하고, 스스로 피해자이니 용서를 구해야 한다. '바닥'만 보며 살던 영화 속 주인공이 마침내 고개 들어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될 때, 수많은 목소리를 받아들이듯 십 대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어린 어른에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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