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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평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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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파파 Nov 04. 2024

042 로봇의 지배(마틴 포드 저)


아내와 신나게 열변을 토하던 중 갑자기 시리(siri)가 '저 여기 있어요.'라며 대화를 방해한다. 이리, 이미, 시기 등등 아마 시리와 비슷한 어떤 음절을 말했기에 그녀는 자신이 나설 때라 판단했으리라. 하지만 대화의 흐름을 끊긴 우린 다소 당혹스럽다.


아마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을 AI 스피커와 스마트폰에 탑재된 시리, 빅스비와 같은 인공지능 기능들은 쓸 때마다 말귀를 못 알아듣고 이상한 작동을 하기에 분통 터진 적이 다들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OpenAI에서 출시한 거대언어모델(LLM)기반의 챗 GPT의 반응은 남다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화(Chat)형식의 AI 프로그램인데, 이것이 단순한 검색 및 질문을 넘어 코딩 같은 복잡한 명령을 수행하고 더 나아가 작곡, 시나리오 작성, 그림 그리기 등 창조의 영역까지 수행이 가능하다. 거기다 인간인지 컴퓨터인지 구분이 어려워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이렇게 챗 GPT를 위시한 인공지능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최근이다. 나 역시 이를 써봤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AI 기술과 비교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나, 인공지능, 로봇 하면 우리 세대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터미네이터와 비교하자니, 아직 우리가 어릴 적 꿈꾸던 인공지능의 미래는 요원하고 느껴진다.


터미네이터 영화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인공지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편리한 기술 속 안빈낙도의 세상보다, 기름 냄새 풍기는 쇳덩이들이 지능을 가지고 인간을 공격하며 지배하는 어두운 세상이 먼저 떠오른다. 이런 이미지의 시초는 무엇일까?


저자는 19세기의 작가 버틀러를 소개한다. 그는 <기계 사이의 다윈>이라는 고전에서 지능을 가진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묘사한다. 애초에 기술 발전 이전에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이 우선하였기에 우리에겐 두려움이 더 깊이 내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1930년대부터 시작한다. 앨런 튜링(앞서 언급한 튜링 테스트를 고안한 사람)으로부터 현대적 컴퓨터가 개발되며 이후 빠른 기술 발전은 몇 년 내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이 개발될 것이라는 낙관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딘 기술발전과 양차 세계대전 및 냉전이라는 정치적 상황 등 여러 이유로 인공지능 기술은 1970년대까지 겨울을 맞이한다.


다시 인공지능이 대중의 화두에 오른 것은 1997년에 한 체스 대결이다. IBM의 인공지능인 딥블루와 체스 세계 챔피언인 개리 카스파로프 간 세기의 대결에서 딥블루가 승리하였다. 이후 2011년 IBM 왓슨이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들을 따돌리고 우승한 이후, 머신러닝 기법의 인공지능 개발이 박차를 가한다.


우리가 잘 아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서 알파고의 승리 후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두려움은 대중에 한층 더 강하게 다가왔다. 경우의 수가 한정된 체스와 달리 거의 무한에 가까운 바둑(우주의 수소 원자 수보다 많다고 한다.) 만큼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많은 석학들이 인공지능을 차세대 발전을 이끌 신기술로 지정하면서 빠른 발전을 이뤘으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인공지능은 사라졌다. 그러던 중 다시 관심을 폭발시킨 것이 바로 챗 GPT이다.


이번의 관심도 이전처럼 다시 쉽게 사그라들지 모르나, 나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전의 인공지능 기술의 이슈화는 체스, 퀴즈쇼, 바둑 등 흥미로운 '대결'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았지만 그러한 기술이 실제 대중에게 활용될 여지는 적었다. 하지만 챗 GPT는 다르다. 이전의 이슈가 대대적인 이벤트적이었던 것과 달리, 챗GPT는 철저히 사용자들의 경험과 이에 대한 입소문으로 인기를 얻었다. 실용 가능성이 높고 그렇기에 선제적으로 찾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지금의 불안한 세계 경제에도 무섭도록 치솟는 미국의 주식시장이 그 방증이다. 미국장의 상승세는 인공지능 기업과 이에 대한 부품 기업들이 주도하는데 일부 과도한 상승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그만큼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거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개발이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매우 기대된다.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의 기술적 소강상태에서 탈출하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 저명한 미래학자 레이커즈와일은 진화와 발전의 과정은 가속적이며, 그 산물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수확 가속 법칙(Law of Accelarating Returns)’을 주장하였다. 비슷한 이론으로 마이크로칩의 밀도가 24개월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 있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디지털 노마드인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발전 속도를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실제 기술발전의 비용적 효율성은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꿈꿨지만, 결국 얻은 건 140자(트위터) 뿐이다.’

피터 틸이 기술적 소강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한 말이다. 스탠퍼드와 MIT 경제학 팀의 연구에 따르면 혁신 창출 효용은 13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기술 발전의 이면을 보면 1970년대와 비교해 연구원의 수는 현재 18배나 증가해 있다. 즉 그간 급속도의 기술발전은 수많은 에너지와 역량을 집중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식량 생산 기술 등의 발전으로 농업과 제조업에 투입되어야 할 많은 인력이 기술, 연구개발 분야로 투입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차 산업현장에는 전 세계 인구의 1~2%만 투입되고 있으며, 낮아지는 출생률을 생각하면 연구, 개발을 위한 인력의 지금까지와 같은 급격한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혹자는 기술 발전의 정체기를 우려한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지금 우리 사회에는 현대의 기술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기후변화와 수많은 자연재해, 새로운 전염병의 창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위기가 과거와 같은 수준이고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면 몰라도, 지금의 수많은 기후 위기는 인간의 책임이 크고 그 위협의 강도는 해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위협은 인간이라는 단일 종에게만 미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동식물도 그 대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이 초래한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기후 위기는 이미 인간의 선의에 기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따라서 탄소 포집, 플라스틱, 비닐 재활용 기술, 청정한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성 향상 등 급격한 기술 발전이 수반되어야 이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다.


또한 기후의 변화는 다양한 질병의 창궐을 초래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경험하였듯 전 세계적인 팬데믹은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새롭고 수많은 사회, 경제문제를 초래한다. 그렇기에 인류는 의학 기술의 퀀텀 점프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술의 도약을 인공지능에서 기대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엄청난 수학적 알고리즘과 무한한 자기학습 기능은 공학, 과학, 의료 분야의 혁신을 기대하게 만든다. 단백질 분자의 접힘 구조를 발견한 딥마인드사의 알파폴드처럼 인간이 행하면 수많은 시행착오와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을 인공지능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같은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모라벡의 역설이라고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쉬운 게 인간한테는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쉬운 게 인공지능과 로봇에게는 어렵다. 인공지능은 수천 조 단위의 연산을 손쉽게 하고, 로봇은 수십 톤의 물건을 쉽게 옮길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강아지와 벌레 중 어떤 생명체가 더 귀여운지 대답하기 어렵고, 로봇은 필통에서 연필 한 자루 꺼내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양한 지식과 능력의 강약 조절이 필요한 곳이다. 아직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그러한 섬세한 작용을 바라는 건 무리기에 우리의 미래를 온전히 기대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발전과 함께 도래할 세상은 반드시 유토피아일까? 현재 나와있는 대부분의 SF 소설들은 대부분 과도한 기술 발전이 인류에 해가 되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흥미 유발을 위해 갈등과 위기 같은 극적 요소를 주요하게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공지능과 로봇의 기술이 초래할 위협도 상당하다.


대표적으로는 과도한 감시체제로 인한 개개인의 인권이 탄압되는 독재국가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미 중국에서 얼굴인식과 수많은 감시 카메라들로부터 그러한 조짐이 보인다. 그 외에도 딥페이크 기술은 거짓 정보의 유포로 수많은 갈등을 유발하고 민주주의를 와해할 위험이 있으며, 드론 등 자율 살상 무기는 테러리스트에게 주어질 경우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의 머신러닝 학습법은 설정하는 개발자의 편견이 잘못 주입될 경우 이의 무한한 학습에 따라 편견과 혐오를 강화할 수 있기에, 인종, 성별에 따른 혐오와 싸우고 있는 수많은 자유주의 국가들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수 있다.


상상만 해도 무서운 기술이다. 그렇다고 이 기술의 발전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기술이 가져올 수많은 이로움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라도 인류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기술발전이 가져올 폐단을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의 가장 중요한 연료는 데이터이다. 수많은 데이터가 있어야 효율성과 정확도가 올라간다. 이에 향후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의 수집은 개인정보의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이미 유출된 수많은 개인 정보로 피해를 본 이들도 적지 않다. 기업과 국가는 개인들로부터 수집하는 정보에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등 개인들의 정보와 인권이 함부로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 간의 교류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대량 자율 살상 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간다는 상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러한 기술과 실제 생산되는 무기들에 대한 세심한 관리과 감독이 필요한데, 이러한 것은 하나의 국가에서 수행하기는 어렵다. 세계 각국이 힘을 합쳐 국제기구 등을 출범하여 이러한 위협에 대한 사전 예방과 사후 조치를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개인정보 수집 주체가 이를 유출한다던가, 기업들의 정보망에 해킹을 시도하는 세력, 딥페이크를 이용하여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자 등등 악용 기술에 대한 반(反) 기술 개발에 국가 단위의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기술을 악용한 자를 엄벌하는 징벌 규정의 신설 등 제도적으로도 개선이 필요하다.


앞서 말한 위협 외에도 인공지능과 로봇은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19세기 초 유럽의 러다이트 운동처럼 인공지능을 파괴하려는 시도도 일어날 수 있다. 직업을 잃은 사람들은 소득이 줄고 사회 전체의 소비가 줄어들며 경기가 둔화될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시대가 자본으로 부가 쏠리게 만들었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에도 이러한 기술과 데이터를 보유한 곳으로 부가 편중될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에 쫓겨난 농민들이 도시로 모여들어 산업혁명의 주축인 노동자가 되었듯, 인공지능이 빼앗긴 이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할 것이다. 최근에 뉴욕에는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 반려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산책을 해주는 서비스가 생겼다고 한다. 도태되지 않은 이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뇌과학자 장동선은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의 스마트폰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정보의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고 대부분의 궁금증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거기에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 정교화되고 개선되면 지금보다 더 손쉽게 우리의 궁금증은 순식간에 해소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암기식, 주입식 위주의 교육 제도 하에서는 개인의 노력 정도를 판단할 순 있어도 미래에 필요한 능력을 함양하기는 어렵다. 지식과 정보를 굳이 머릿속에 넣을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의 상황과 문제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수집하고, 이를 연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장동선 박사는 이것이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 더 많은 것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인공지능의 역사와 발전 과정, 기술이 초래할 명암 등 인공지능 분야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상당한 정보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기술이 우리의 미래에 파괴적인 혁신을 초래할 것이 자명한 만큼 읽으며 많은 두려움과 우려, 기대와 설렘이 공존했다. 그러한 미래를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쉽게 도태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식의 깊이와 다양성을 키워야겠다는 경각심이 강하게 드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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