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알쓸신잡이라는 시사, 교양 예능에서 유시민 작가가 이 책을 언급했다. 유시민 작가의 소개는 다소 급진적이었는데,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생명체야 차치하더라도 인본주의하에 세워진 인간 우월주의를 송두리째 무시하는 듯한 저자의 충격적인 주장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이기적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의 선택 때문일까, 이 책은 더러 오해를 받는다. 저자도 이 부분을 인지해서인지 서두에 '이기적(selfish)'이라는 단어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음을 항변한다. 유전자의 선택에 특정 동기나 감정이 섞여 있지 않지만, 유전자 자체만을 위해 작용하는 기재를 설명하기에 이기적이라는 말만큼 적당한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소중한 삶의 가치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과 철학적 가치는 명백히 다르다. <페스트>와 <이방인>으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는 인간 삶의 유한함과 유의미는 우주의 무한함과 무의미와 모순되는 부조리이지만, 이를 인식하고 열정적으로 생을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우리들 각자의 생애는 온갖 열정과 목적, 사랑과 우정, 혐오와 반목들로 가득하며 그 모든 것에 좋든 나쁘든 우리에게는 유의미하다. 반면 달의 공전과 지구의 자전 같은 천체의 움직임은 그 무한한 동력에도 어떠한 가치나 의미가 없다. 이렇듯 진화생물학에도 마찬가지이다. 리처드 도킨슨은 철저히 학문적 관점에서 '사실'을 서술하려는 것이지,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를 폄하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는 책 곳곳에서 '의식적인 동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비슷한 예로 음식을 들 수 있다. 음식을 통해 영양분을 얻는다고, 음식이 영양분을 주는 물질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같은 영양소를 함유한 음식이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의 만찬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바쁜 하루를 열정적으로 보내기 위한 에너지 원일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의 몸을 이용하여 유전자가 불멸성을 유지하려 한다고 해서, 우리 몸이 유전자를 전달하는 유기체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밝혀진 사실을 근거로 하는 과학이란 학문은 차갑다. 도킨슨뿐만 아니라 천체물리학자들도 우주적인 관점에서 단일 생명체를 넘어 지구의 인류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 우주의 사이즈를 고려하면 그러할 수 있다. 인간의 한 개체가 살아가는 100년의 시간은 생명체가 진화해 온 수십억 년의 시간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렇기에 진화 생물학에서 하나의 생명체에 집중할 이유는 전무하다.
여기까지는 사실 기반의 과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개체에 눈길조차 줄 이유가 없는 학문적 사실 속에서, 가치와 철학을 찾아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을 좇는 우리들의 역할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챕터는 11장 밈- 새로운 복제자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인간은 유전자의 진화로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문화의 진화를 수반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도킨슨은 11장을 마치며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와 밈에 반항할 힘이 있다고 역설한다. 앞서 그가 지겹게 얘기했듯 그 둘에는 인위적 의지가 없다. 다만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발전했을 뿐이다. 무의식적인 유전자와 밈의 이기성을 순수한 이타성으로 대응하고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은 지구상에인간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인간은 (지구 한정)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다만 특별하기에 배타적인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 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은 유전자의 이기성을 핑계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약탈하고 남용하였는가. 이기적인 유전자와 밈의 폭정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지구에서 인간뿐이기에, 지금까지의 인간의 무의식적인 이기심에 망가져 가는 지구를 되살리는 건 우리들의 역할이자 책무이다.
이 밖에도 전통적인 집단 선택설에 대한 명쾌한 반박과 게임이론을 통한 진화 과정의 설명 등은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통찰을 넓혀 주었다. 이러한 부분들이 '이기적'이라는 논쟁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