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에 숨은 의미는 양자 세계의 물리 법칙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직관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직관에 어긋나는 물리현상은 양자의 세계에서만 일어날까? 우리의 세상에서는 사과가 지면을 향해 낙하한다. 이러한 힘의 작용은 중력에 의해 일어나는 만유인력의 법칙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의 달과 별은 지구로 떨어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지구는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할 뿐이다. 태양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은하의 중심으로부터 공전 중이다. 모든 물체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는 물리 현상에 익숙한 우리는, 직관에 반할 법한 천체의 움직임에는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을 박해하고 신성모독이라고 질타하며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신의 섭리라 여기며 진실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케플러를 위시한 수많은 과학자들의 위대한 연구들 덕분에 우리 세상이 천체의 움직임에 익숙해졌기에 현재의 우리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양자역학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유명한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으로 양자역학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당시 전자의 입자와 파동의 이중적 성질은 실험과 관찰에 의해 명백히 밝혀졌으나, 현실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각과 완전히 달랐기에 이에 대한 해석에 있어 설왕설래가 있었다. 1930년대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모여 덴마크의 수도에서 양자역학에 대한 기념비적인 논의가 이뤄진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코펜하겐 해석이다.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 : 당시 전자는 입자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전자를 이중 슬릿으로 발사해 본 결과 간섭무늬가 나타났고, 이를 통해 전자의 파동적 성질을 발견하였다. 이 실험은 입자와 파동의 서로 다른 성질이 양립할 수 없다는 기존 물리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양자역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우리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논의된 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이러한 역학은 아직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 교양 지식으로 안착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직은 양자역학의 현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우주 공간에 떠있는 천체들이 왜 수직낙하하지 않는지 의문을 표하지 않는 이유는 청소년 시절 의무교육 기간에 배울 정도로 지식의 보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반직관적 현상에 대한 이해도는 학습 빈도에 비례한다. 그렇기에 양자역학의 난해함도 교육과 관심이 누적되면 언젠가는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런 와중에 우리에게 양자역학의 관심을 단번에 일깨워 준 사건이 있었다. 바로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의 대흥행이다. 거기에 유튜브에 수많은 양자 역학에 대한 설명 영상들이 업로드되며 대중의 양자역학에 대한 지식수준이 한층 높아졌다. 나 역시 이러한 과정을 따라 양자역학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더 알고 싶어서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찾아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 책이 양자역학에 관해 3권째 읽은 책이다. 이전에 읽은 두 권의 책은 가벼운 교양 수준의 언급이 주되었다면, 이번에 읽은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양자역학 50지식>은 상식과 관심 수준에 읽기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과반 이상이었고, 유튜브와 인터넷을 검색하며 읽느라 독서 시간이 책의 양에 비해 상당 기간 소요되었다. 그래도 양자역학의 시작부터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지금까지 보다 전문적인 접근 방식이 양자역학에 대한 나의 관심을 한 단계 더 올려 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세상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는 원자로 알고 있었다.(물론 과학계에 양자역학 개념이 도입된 건 한 세기 전이지만 일반 사람들의 상식선 얘기를 하는 것이다.) 가장 작은 입자 단위라고 알고 있던 원자가 원자핵과 전자로, 그리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그리고 그 각각은 쿼크로 계속해서 쪼개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신기함과 왠지 모를 허탈감이 들었다. 신기함은 그렇게 작은 미시 세계까지 연구할 수 있는 과학계에 대한 감탄이고, 허탈감은 원자라는 종착역인 줄 알았던 물질 근원에 대한 연구가 아직 갈 길이 멀고 먼 끝을 알 수 없는 중간 역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쿼크와 렙톤, 보손 등 총 17개로 이뤄진 표준모형을 정립하였지만, 중력자의 존재와 4세대 이상의 쿼크 쌍, 새롭게 등장하는 초끈이론 등 아직 입자 물리학의 끝은 알 수 없다. 이러한 미지의 세계가 주는 흥분은 물리학자들에게 양자 세계에 대한 도전의식을 높여주는 동력일 것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앤트맨의 크기 조절부터 엔드게임의 시간 여행까지 곳곳에 양자역학이 녹아 있는 모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이전에는 그냥 무슨 소리야 하며 흘려 넘긴 것들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양자역학에 대한 여러 지식을 접하고 보니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앤트맨에서 몸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설정은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은 원자핵 주위에 전자가 궤도에 따라 공전하고 있다. 이때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빈 공간이 상당한데, 원자핵을 서울시청 크기로 늘려본다면, 전자는 서울 끝자락에 있는 돌멩이 정도의 크기가 된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엄청난 빈 공간을 마음대로 늘이고 줄일 수 있다는 설정에 따라 앤트맨은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재밌는 설정은 멀티버스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파이더맨, 로키 등 수많은 시리즈에 이 개념이 등장하였다. 멀티버스는 1957년 휴 에버렛이 제안한 다세계 이론을 기초하는 것으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에서 관찰자에 의해 결과가 정립되는 해석에 대한 불만을 시작으로 발달한 이론이다. 중첩되어 있던 현실이 관측에 의해 결과가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주는 분화되어 우리가 사는 세계 외에도 수없이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불필요한 부연은 모두 오컴의 면도날로 제거하여 가장 단순한 논리를 지니고 있고, 직관적이지 않았던 양자 역학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일부 과학자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SF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실증 가능성과 분화 과정에 대한 상세하지 못한 설명은 이론의 힘을 약화시키기는 하나,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하기로는 더없이 좋은 소재이다.
마지막으로 엔드게임의 시간 여행에 사용된 이론이다. 어벤져스 팀은 인피니티 스톤을 찾아 과거로 여행의 출발 전 난관에 봉착한다. 이때 토니 스타크는 EPR 패러독스를 언급하며 시간의 좌표를 찾아줄 해결책을 들고 온다. EPR 패러독스는 아인슈타인(Einstein)-로젠(Rosen)-포돌스키(Podolsky)의 이름 앞 글자를 딴 논문의 제목으로 원제는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물리학적 기술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이다. 원제가 너무 길고 장황해서 'EPR 역설'로 통칭되며, 이는 양자역학에 반대하기 위해 나온 논문이다. 하지만 이름처럼 역설적이게도 양자역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양자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입자에 대한 측정이 다른 입자에 동시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나,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 따라 멀리 떨어진 두 입자 간의 정보 전달은 빛보다 빠르게 이뤄질 수 없으며, 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은 변수에 따른 것이므로 양자물리학은 불완전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후 얽힘 관계에 있는 입자 간의 동시적인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영화에는 단지 EPR 패러독스 이름만 등장했을 뿐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생략되었지만, 토니 스타크의 의견이 정확한 시공간의 좌표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미뤄볼 때, 양자의 세계에는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경로가 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우주로 갈 수 있다는 설정이 아닐까. 이러한 이동 설정은 아직 이론적으로 논의되거나 제안된 것은 없어 보이며, 영화적 상상력을 강하게 입힌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듯 양자역학은 영화 속에서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너무나도 작은 세계를 관측하기에 연구도, 실험도 쉽지 않다. 혹자는 관측하기도 어려운 미시세계를 연구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양자역학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스마트폰, 컴퓨터와 이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등은 양자역학(더 구체적으로는 양자전기역학(QED))이 없었다면 발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주변을 밝혀 주고 있는 LED도 양자 기술로 작동되고 있으며, 지금의 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양자 컴퓨터는 지금의 컴퓨터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들의 삶에 엄청난 혁신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일지라도 그 영향을 함부로 재단하는 성급한 자세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위대한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전자기 유도 법칙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시연하는 자리에서 영국 총리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실험 결과는 인상 깊게 잘 보았습니다. 다만, 저것들을 어디에 사용할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한 패러데이는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언젠가 여기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라고 답하였다. 과거에는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기술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필수 자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양자(Quantum) 세계의 발견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편의를 제공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