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라는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야"
이사를 앞둔 부모님 집을 정리하다가 어언 20년이 다 돼가는 군 시절에 주고받은 편지다발을 발견했다. 그중 한 통의 편지에 저 문장이 쓰여 있었다. 문득 저 편지를 받았던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저 말을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편지를 썼던 친구는 군생활의 막막함을 위로해주고 싶었겠지만, 당시의 나는 2년이라는 군생활이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처럼 느꼈으니까.
눈뜨면 마주하는 관물대가 어색하고, 군대식 말투와 제식들이 생소했다. 선임의 이유 모를 갈굼부터 간단한 삽질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 자신의 어리숙함까지, 모든 순간이 끔찍이도 싫었다. 도저히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국방부의 시계는 흘러간다'고 하였던가! 결국 나는 제대했고, 취직해서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군시절이란 2박 3일이고 쉴 새 없이 나불댈 수 있는 재밌는 안줏거리일 뿐이다. 당시에는 비극으로 점철되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떨어져 바라보니 희극의 한 장면이 되어 있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색다르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현재라는 근거리에서 바라보면 인생이 비록 비극처럼 보일 지라도, 미래의 원거리에서 바라보면 희극이 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군 시절뿐만 아니라 대입과 취업이라는 (당시에는) 인생 최대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고3과 취준생 시절은 온갖 고뇌와 좌절이 가득했지만, 그때가 먼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에서 그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던 나 자신이 대견하고 애틋할 뿐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폭풍과 폭풍사이에 잠시 찾아오는 고요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과거의 비극이 희극으로 대체되는 순간, 우리는 곧바로 또 다른 인생의 폭풍을 마주한다. 과거의 힘든 여정이 하나의 훈장이 될 때쯤, 나는 새로운 폭풍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일과 육아의 병행이라는 바쁜 삶이다. 나는 아빠로서의 다정함과 직업적 성취감에 쫓겨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다. 혹자는 모두가 겪는 일상을 너무 과장해서 표현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진정한 고난은 나의 정서적 상태이다.
육체적으로 지친 상황에서, 나의 감정은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매사에 작은 일에도 날 선 반응을 보일 때가 많았다. 그런 태도는 주로 아내와 아들을 향했고, 내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쌓여갔다. 반성에 그칠 뿐 변화 없는 내 모습에 나 자신을 혐오하기도 했다. 자존감의 추락과 자기 효능감의 상실은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을 사라지게 했다. 그렇게 나는 우울의 늪에 발목을 붙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인생의 고난이란 강물 위의 낙엽과 같다는 믿음을 되새겨 보았다. 수많은 낙엽이 강물 위를 뒤덮을지라도, 가벼운 낙엽은 흐르는 물결에 덧없이 흐른다. 그리고 어느덧 보이지도 닿지도 않을 곳으로 흘러 사라져 버린다. 반면에 내 가슴속에 아로새겨진 삶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강바닥에 박힌 돌덩이 같다. 아무리 물살이 세차게 흐른다고 해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며, 나는 지금의 비극이 희극으로 변할 내일을 기다린다. 그렇게 내일, 모레,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우울감을 잊고 지금의 행복한 순간만 기억한 채 주어진 삶을 감사히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 망각은 내일을 살아갈 힘을 전해주는 신의 은총이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인생이 비극이라 생각한다면, 그 시절을 참고 견디라고 응원하고 싶다.
“지옥을 겪고 있다면, 계속 나아가라”
윈스턴 처칠의 이 말처럼,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지금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비극처럼 느껴질지라도, 시간은 이를 희극으로 바꿔줄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꾹 참고 버티면, 언젠가 지금을 돌아보며 웃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