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스케치북"

by 나무파파

우리 아들은 얼마 전부터 낙서 놀이에 빠졌다. 사인펜과 색연필을 이용해서 집안 곳곳을 자신의 낙서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긴 하지만, 청소하는 게 너무 힘들어 스케치북을 사줬다.


‘그림은 꼭 여기에만 그리는 거야~ 알겠지?’


이렇게 말을 해줘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 중인 자유분방한 3세는 자신의 예술작품을 스케치북에만 가두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수 일 간의 옥신각신 끝에 드디어 (주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아들의 그림(이라기보다 불규칙한 선들 집합체)을 보고 있으면 얘는 무얼 그리나 싶다. 그래서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아는 동물이 차례로 나온다. 치타부터 원숭이, 강아지, 돼지, 야옹이 등등등.. 아무리 콩깍지를 씌우고 봐도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ㅎㅎ


그러다 혼자 그리는 것이 심심했는지 가끔은 나나 아내에게도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미술적 재능이 전무한 우리 부부는 아이가 요청하는 캐릭터를 보며 열심히 따라 그린다. 아이들 캐릭터답게 단순해서 따라 그리면 나름 비슷하게 그려진다. 아들 눈에는 훌륭해 보이는지, 캐릭터와 나의 그림을 번갈아 가리키며 ‘똑같다, 똑같다’를 연발하며 작은 손으로 박수를 치곤 한다.


아무것도 없는 하얗고 깨끗한, 그러나 어딘가 공허한 스케치북 위 공간이 다채로운 색상의 선을 입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19~20세기 활동한 아일랜드 출신의 문학인 조지 버나드 쇼는 “인생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실존주의적인 그의 격언이 텅 빈 스케치북과 오버랩되며 허무주의에 빠졌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한때의 나는 반복되는 일상, 고된 업무, 변화 없는 매일의 굴레에 갇혀 얕은 우울감에 빠졌었다. 아침에 지친 몸을 이끌고 일어나서 힘겹게 회사로 간다. 하루 종일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회사지만, 출근하자마자 마음속으로 ‘집에 가고 싶다’를 무한번 되뇐다. 퇴근 후 잠깐의 자유를 즐기지만, 밀린 집안일과 잠깐의 휴식을 보내면 또다시 내일의 출근을 두려워하며 잠자리에 들어간다. 덧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권태를 느끼며 삶에 대한 회의감에 빠졌다. 현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감정이 마음속 전반을 지배하며 인생과 삶을 부정하였다. ‘대체 인생이란 게 뭐지? 무슨 의미가 있어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당시에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상태를 번아웃이라 표현하며, 이 단어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렇게 삶에 대한 흥미를 찾지 못하여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시기에 접했던 3권의 책이 나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었다. 바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이다. 각기 다른 분야지만 이 책들은 공통적으로 삶의 무의미함을 인정하고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할지 말해준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명의 진화를 설명하며, 그 과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책의 마지막에 생명체를 바라보는 시각에 “장엄한 것이 깃들어 있다”라고 말하며, 종의 번식과 생존을 위해 격렬히 살아가는 존재를 예찬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생명체를 유전자의 생존 도구로 설명한다. 이 역시 존재의 무의미함을 담고 있지만, 도킨스는 인간이란 유전자의 폭정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주체적인 삶을 강조한다. 유전자가 우리를 살아가게 할지라도 그 방향은 우리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뜻 같아 마음에 와닿았다.


다윈과 도킨스가 생물학적 관점에서 무의미에 대항하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역설하였다면, 카뮈는 철학적 관점에서 무의미를 논한다. 카뮈에게 세상은 부조리한 곳이다. 인간은 의미지향적인 존재인 반면 세상은 무의미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방인>의 뫼르소나 <시지프스의 신화>의 시지프처럼 무의미를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부조리에 저항하는 자세라 말한다.


물에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을 때 ‘맛없다’고 하는 것과, 내가 끓인 된장찌개가 엉망이라 ‘맛없다’고 하는 것은 같은 표현이지만 그에 담긴 의미는 전혀 다르다. 마찬가지로 계속 이야기하는 무의미함은 존재를 폄하하거나 비하하려는 목적이 담겨있지 않다. 그저 단어 그대로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무의미를 대하는 태도에서 인생은 갈림길을 마주한다. 그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좀비처럼 회사를 오가기보다 그 속에서 자아실현이라는 의미를 정립하는 삶이, 혹은 취직→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교과서적인 삶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해 사는 삶이 더 높은 활기를 전해줄 수 있다.


이렇게 세 권의 독서 경험을 통해 세상의 무의미성에 잠식당해 삶의 의지와 동력을 잃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를 깨달았다. 하얗고 깨끗한 페이지를 다양한 철학과 의미로 다채롭게 채워 넣는 것은 붓을 쥐고 있는 나만의 특권이다. 사회적 관계 혹은 맛있는 음식,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등 수많은 관계와 형태, 그리고 행위까지 우리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그저 살아가는 반복, 순환적인 생활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면, 그건 자연의 이치이자, 시작이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다음 단계인 삶의 의미를 규정하는 여정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이런 깨달음에도 어느 순간 삶이 고되고 지칠 때 공허와 우울을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은 페이지가 무한한 스케치북이다. 오늘의 페이지에는 뭉크의 <절규>가 그려지더라도, 내일의 페이지에는 가슴 설렌 사랑을 쫓아 클림트의 <키스>를 그릴 수 있는 게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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