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식기세척기"

by 나무파파

우리 집에 식기세척기가 처음 들어온 것은 2022년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나와 아내가 재택근무를 하던 시절, 뱃속의 아이를 품은 아내를 대신해 내가 요리와 설거지를 도맡았다. 요리하는 일은 즐거웠지만, 매번 쌓이는 설거지는 고역이었다. 하루 두세 끼 분량의 식기를 닦고 정리하는 데만 한두 시간이 걸렸고, 고무장갑을 외면했던 손에는 주부습진이 번져갔다. 결국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설거지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았다. 그때부터 부엌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되었다. 더 이상 곁눈질로 유튜브를 보며 그릇을 닦는 답답한 곳이 아니라, 노동을 덜어주는 든든한 존재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장소로 변모했다.


코로나가 지나고 출근이 권장되면서 육아와 일이 겹친 우리의 일상은 더 분주해졌다. 부엌 한켠에 존재하는 식기세척기는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릇을 정리해 넣고 식기세척기의 작동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낯선 침묵이 흘렀다. 고장이 난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단순한 가전제품의 고장이었지만, 이미 효용에 길들여진 우리는 그 부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다시 설거지옥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수리 기사는 새 제품을 사야 한다고 했다. 식기세척기가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마치 설거지하는 법을 잊은 사람들 같았다. 예전에는 어떻게 이 많은 식기를 직접 닦았을까? 그렇게 며칠을 버티고 새 식기세척기가 도착했을 때, 그것은 구원자처럼 보였다. 그 짧은 공백기는 최신 기술에 종속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유약해지는지를 드러내 주었다.


돌이켜 보면 기술 발전은 우리의 손에서 많은 능력을 걷어갔다. 나는 사냥을 할 필요도, 집을 직접 지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고, 나는 그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그런데 이제는 인공지능이 단순한 육체노동을 넘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겨졌던 사유와 숙고의 능력까지 대신하려 한다.


요즘 나의 업무에서도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필수다. 간단한 이메일 작성부터 보고서 요약, 보도자료 작성까지, 과거에는 수차례 고민과 수정이 필요했던 과정이 이제는 명령어 입력과 복사·붙여 넣기면 끝이다. 몇십 분, 때로는 몇 시간이 걸리던 일이 순식간에 끝난다. 챗GPT를 처음 사용한 순간의 충격은 마치 식기세척기를 처음 마주한 때의 그것을 상회했다. 지금은 그 편리함에 잠식되어 AI가 대체하는 영역의 확대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기술의 속도를 돌아보면 머지않아 그 변화는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다.


새로운 전환 앞에서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식기세척기에 익숙해진 내가 설거지를 어색해했던 것처럼, AI에 길들여진 사람은 챗GPT 없이는 이메일 하나조차 쓰기 힘든 날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다소 과장된 두려움일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늘 인간의 능력을 대신했고, 우리는 그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지 쉽게 잊곤 했다.


다시 식기세척기로 돌아가 보자. 사실 우리 부부는 처음 식기세척기를 쓰며 그 세척 능력을 의심했다. 밥풀이 눌어붙은 채로 그릇이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몇 주간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려면, 그릇을 넣기 전에 간단한 초벌 세척이 필요하다는 것을. 물에 불리고 수세미로 한두 번 훑어주면 식기세척기는 제 몫을 다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미리 한번 닦을 거면 굳이 식기세척기를 왜 쓰냐”라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편리함만 좇다가 덜 씻긴 그릇을 마주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인공지능도 다르지 않다. 아무 준비 없이 모든 것을 AI에 일임하면 과정은 극도로 간편하고 신속하지만 결과물은 어딘가 공허하다. 그러나 그전에 스스로 사고하고 방향을 정하는 ‘초벌 세척’을 거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식기세척기가 사람의 손길을 완전히 대신하지 못하듯, AI 역시 인간의 사유 없이는 제 몫을 다할 수 없다. 그때 비로소 AI는 인간의 능력을 퇴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유를 확장시키는 동반자가 된다. 편리함 속에서도 주체성을 지키는 것, 그것이 기술에 잠식되지 않고 최대한의 활용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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