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러닝(Running)"

by 나무파파

요즘 러닝이 유행이다. 나는 아내를 따라 몇 해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내는 회사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할 정도로 달리기를 즐겼지만, 나는 불어난 나잇살과 술살을 줄이려는 게 목적이었다. 처음에는 3km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10km 대회를 완주하며 성취감을 맛본 뒤 꾸준히 달리기 시작했고, 기록단축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10km 대회에만 나갔지만, 올해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했다. 11월 대회를 신청해 두었는데,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한다.


러닝의 매력은 단순하다. 축구, 농구, 탁구처럼 상대와 득점을 겨루는 경기와 달리, 달리기는 오직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같은 대회에 수천 명이 모여도 이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다. 각자의 페이스로 달리면서도, 누군가 옆에서 “파이팅!”을 외쳐주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이 점에서 러닝은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치열한 경쟁 시스템을 벗어나 인류애를 느끼게 한다. 또, 노력한 만큼 결과가 눈에 보인다. 뒹굴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나가서 달린다면, 체력이 늘고 기록이 단축되는 것이 보인다. 10km 완주만으로 기뻐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달려온 거리만큼 더 높은 목표가 생긴다.


하지만 요즘 사회는 노력의 가치를 점점 의심한다. ‘노력’보다 ‘타고난 것’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리는 듯하다. 사실 노력의 가치는 오랫동안 사회를 지탱해 온 기둥이었다. 과거 ‘귀족주의(aristocracy)’ 사회에는 출신과 혈통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확산하면서 ‘능력과 노력으로 부와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등장했다. 프랑스 시앙스 포(Sciences Po)의 설립자 에밀 부트미는, 출신이 아니라 능력 있는 자가 공공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정치·행정 지도자를 교육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와 동시대인들은 신분이 아닌 능력을 기준으로 한 사회, 즉 능력주의(meritocracy)를 이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완전한 정의의 체제가 아니다.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이’라는 기준에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숨어 있었다. 성공한 자는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 자부했고, 실패한 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해야 했다. 누구든 노력하면 계층을 이동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는 데 용이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믿음조차 점점 힘을 잃고 있다.


토마 피케티가 지적했듯이,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르는 구조(r>g)가 고착되며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한때는 누구나 노력하면 ‘개천에서 용 난다’는 서사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 여기에 저출산과 고령화가 불러온 구조적 저성장까지 겹치면서,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더욱 높아졌다. 이런 상황 속에 사람들은 노력의 가치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호르몬과 유전자에 대한 담론이다. 외모, 지능, 부모의 재력 등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된 조건들이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은 어느새 보편적인 상식처럼 퍼지고 있다. 노력은 의미 없다는 냉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는 체념. 이러한 염세주의적인 시각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고, 유전자 만능주의는 하나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달리기를 통해 이러한 믿음과 다른 진실을 경험했다. 인간은 유전적 한계 안에서 능력이 규정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러닝을 예로 들어, 내 신체 조건에는 10km 45분의 기록이 한계라고 가정하자. 만약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고 미리 체념했다면, 몇 번 시도하다가 1시간 기록을 ‘내 한계’라 규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한계 따위는 신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지 않고 계속 달린다면, 그 과정에서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으며 조금씩 단축되는 기록이 주는 성취감을 만끽할 수 있다. 노력은 현재를 바꾸는 유일한 수단이며, 바로 그 과정에 인간다운 존엄이 깃들어 있다.


삶은 달리기와 닮아 있다. 어떤 이는 좋은 신발을 신고, 어떤 이는 이미 단련된 몸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러닝의 본질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달리기가 그러하듯, 삶의 의미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비롯된다. 출생의 주사위가 던져졌더라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값지다. 나는 러닝을 통해 그것을 배웠고, 그 가르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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