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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Inner Life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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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 et Moi Nov 01. 2020

그림자와 화해하기

  누구에게나 자신에 관해 잘 모르는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뒤통수, 걸음걸이, 뒷모습, 미세한 표정과 제스처를 인식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비틀어진 자세나 거북목 같다고 할까? 평상시에는 이미 틀어진 자세를 크게 인식하기도 어렵고 수정하기란 더더욱 불편하다. 틀어졌지만 더 익숙하기에 편하다. 어디 한 번 디스크라도 나가야 고쳐먹을까 말 까다. 결국엔 손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야 말로, 띄용 눈뜰까 말까이다. 신체도 이럴지언데 보이지 않는 성격이나 맘은 얼마나 더할까?


  자신에 관한 맹점의 영역이 넓을수록, 그리고 맹점 영역이 삶에 침습하여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는 데도 맹점을 응시하지 않으려는 시간이 지속될 때, 삶과 관계에서 잠재적 갈등에 휘발유를 붇기 시작한다. 삶에 드리우진 그림자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외적으로 잠재된 갈등의 발현은 물론이거니와 대인관계와 상황 속에서 마치 도플갱어, 흑조, 다중인격과 같은 모습을 보다.

 

  우선 각각의 뜻을 살펴보면, 첫째 '도플갱어'는 자신과 똑 닮은  분신 같은 모습을 지닌 사람이 존재하는데 이를 도플갱어라 한다. 자신의 도플갱어를 보면 불행하게 죽는다는 썰이 있다. 둘째 '흑조'는 몰랐던 혹은 금기된 봉인된 욕망을 각성한 후 일상적인 나를 뒤집고 바꿔놓고 보이는 평소와 정반대 혹은 상반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다. 셋째 '다중인격' 정신의학 진단명을 떠나 일반적으로 원래 성격과 전혀 다른 성격을 보 때 쓰인다. 살펴본 도플갱어, 흑조, 다중인격의 공통점은 또 다른 나라는 뜻이자, 또 다른 나가 자신에게 '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자신을 방해하는 악성코드이자, 그림자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융에 따르면, 그림자는 자아로부터 억압되거나 소외된, 그래서 미숙하고 열등하고 미분화된 성질을 나타내는 자아의 어두운 면이자 열등한 인격이라 설명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들로서 우리가 결코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이다. 자신이 식별하지 못하고 의식화될 기회를 잃었기 때문에 미분화된 채로 남아 있는 원시적인 심리적 경향 및 심리적 특징다. 의식하지 못하나 대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 그래서 보통 우리는 열등하고 어두운 인격이 드러날까 두려워 그림자를 거부하거나 억누를 뿐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림자가 있다. 누구나 대면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있기에 양면적이고, 이중적이며 모순적인 면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해와 달에 가치 판단할 것은 없다. 그저 어떤 미친 구석이라고 할까? 단, 그 미처 알지 못한 미친 구석이 자신도 모르게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의 적이 되어 해를 미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상상할 수 있나? 결국은 억눌렸던 자신의 인격 일부에게 통제권을 자리를 내어 준 셈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격이 단절되는 현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코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착 달라붙어있어 보지 못한다. 쉽게는 술에 취해서 보이는 행동들에 반영되어 있다.


  만약,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현상이 발생한다면 싸움이 심각해질수록 자기 자신과 분열이 일어나는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교통사고의 크기에 따라 분열 혹은 단절 수준은 차이가 있으나,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과 싸우는 결과로 인격을 통합시키지 못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다음은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소재 삼아 만든 영화 목록이다.


  위의 영화는 영화적 서사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세우지만, 결국 우리네 삶에서 중요한 심리적 개념들을 구현한 것이다. 자신이 거부하는 욕망, 자신이 거부하는 성격, 이례적 사건들에서 돌출되는 낯선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여 대입해본다면, 영화적 재미는 물론 자신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영화상에서 다양하게 변주된 그림자는 태양, 지구, 달이 만드는 일식과 월식을 떠올리게 한다. 태양이 가려지는 일, 달이 가려지는 일.. 일식, 월식은 모두 그림자로 인해 빚어지는 일이다. 달의 그림자이거나, 지구의 그림자이거나, 모두 그림자가 태양 빛을 가리는 것이다.


  월식을 모티브로 한 영화 2018년에 개봉한  '완벽한 타인'이 있다. 영화에서 관계 속에서 숨겨진 그림자가 표출될 때를 월식 현상으로 상징화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그림자와 더불어 잘 살아가지 못하는 일반 사람 비추고 있다. 감추어진 모습을 관계에서 직면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한창 이슈가 되었던 주제가 도출되고 마는 이야기다.

  건강한 거리라는 뻔한 교훈은 일단 뒤로하고, 그림자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전체성이 파괴된 상태다. 파괴정도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는 어떤 한 사람에게서 엄청난 배신감이 들 정도로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영화적으로는 애매하게 끝이 나버렸지만 현실에서는 실제로 의식화하지 못한 그림자가 과다하게 표출될 테니, 영화보다 더하게 꼬이는 상황이 벌어질 테다.


  그럼 만약 한 사람이 그림자를 인식하여 통합한다면, 어떠할까? 과거에는 일식과 월식 현상을 지켜보며 불운의 징조로 두려워하고 무서워했지만, 현재는 신비로워하는 꼭 봐야 할 진귀한 풍경이자 이벤트다. 이처럼 이해하고 보면 달라다. 그림자 하면, 어두움을 떠올릴 수 있지만 결국 그림자는 되어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다.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들을 발견하다.

그림자는 제2의 아이덴티티.

  

  많은 심리학자들은 제2의 자기와 더 많이 접촉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유익하다고 말한다. 제2의 자기가 반드시 영혼의 어두운 측면과 꼭 연관되지는 않으며 제2의 자기는 단일한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볼 때마다 달라지는 자기의 하위 구조라고 설명한다. 이는 마치 빛의 삼원색처럼 색의 조합과 비율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을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래서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고 내면에만 숨어 있는 성격이지만 이러한 성격 특질에 빛을 드리울 수 있다. 그림자와 접촉하여 그림자를 의식하고 소화할 수 있게 되면, 인격적으로 도약 가능하게 된다. 도약한다는 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가능테를 갖는 일이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거듭나는 길이다. 게다가 그림자를 소화할수록 마치 쨍하고 드리운 정오의 햇살처럼 그림자가 없는 것 같은 느낌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그림자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때, 더 자유롭고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제는 이례적인 사건들로 모르는 몰랐던 혹은 애써 거부해왔던 자신을 대면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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